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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겨울에야 보이는 것

바람아님 2025. 2. 20. 01:18

조선일보  2025. 2. 20. 00:08

세상 차갑게 식어갈수록 더 짙어지는 사람의 호흡
오염되지 않은 긴 숨결은 추워야만 본모습 드러내

무심코 내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입김 때문이었다. 출근길, 폐에 차 있던 공기가 입으로 빠져나와 얼굴을 덮었다. 간밤 몸 안에서 데워진 온기가 얇은 담요처럼 천천히 펼쳐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잠시 펄럭이다가 곧 바람에 올이 풀려 날씨의 일부가 돼가는 장면을 새삼 신기해하며. 영하(零下)의 기온, 아직 겨울이 다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날이 추울수록 입김은 짙어지고 더 쉽게 허기진다. 광역버스를 기다리며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입김을 흘릴 때, 그들의 머리통은 작은 밥솥처럼 보이기도 한다.....저마다 체내의 압력을 다스리며 조용히 뱉어내는 그 온기의 출처가 나는 한숨이 아니기를 바랐다.

숨 막히는 일상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성경의 언어 히브리어에서 입김은 덧없음을 의미한다. 현란한 웅변의 시대에 고작 입김을 논하다니, 역시 무용한 일로 여겨질 것이다.....그러나 엄혹한 시절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가장 원초적인 내면이 있으며, 고로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성찰이 있다는 사실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아침 버스에 사람들이 올라탔다. 여럿이 뿜어낸 훈김으로 금세 차창이 흐려졌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릴 때 누구나 갑갑함을 느낄 것이다. 눈앞이 뿌옇고 가끔은 거추장스러울지도 모른다.....앞자리에 앉은 한 연인이 창에 입김을 불어넣고는 손가락을 갖다 댔다. 짜증 내거나 꾸벅꾸벅 조는 대신에, 뭔가를 그려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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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겨울에야 보이는 것

 

[에스프레소] 겨울에야 보이는 것

무심코 내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입김 때문이었다. 출근길, 폐에 차 있던 공기가 입으로 빠져나와 얼굴을 덮었다. 간밤 몸 안에서 데워진 온기가 얇은 담요처럼 천천히 펼쳐지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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