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츨처-조선일보 2014.05.22 허영한 멀티미디어영상부 차장)
세월호 現場에 나선 기록자들
不信 초래한 과당경쟁 속에서 눈물 삼켜가며 카메라 들고 悲劇 전해야 하는 숙명에 고뇌
비주얼 시대 이미지 넘쳐나는데 그 본질과 생산자는 소외되다니
언론이 싸잡아 비난당할 때마다 사진기자들은 적대(敵對)의 최전선에서 화살을 받게 된다.
카메라는 기자라는 직업을 상징하는 대표적 착의(着衣)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진기자는 그런 비난도 숙명으로 알고, 눈물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직업이 요구하는 일을 묵묵히 한다.
견디는 것이 쉽지 않지만 견디는 것도 일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 초기에도 사진기자들은 혼란의 한가운데서 같이 울지 못하고 욕설과 위협을 무방비로 받았다. 사고 이후의 사실(事實)과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엄중히 사진으로 전하기 위해 일했지만 대중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언론이 한 이름으로 비난받는 것은 억울하지만 불신(不信)에는 이유가 있었다. 목소리는 다양한데도 다름을 인정하지 않은 지 오래됐고, 과당경쟁과 대립의 악순환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언론은 대중의 관심을 받아야 되고, 그래야 이윤이 따라온다는 사실에 대한 집착은 검증 절차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마저 건너뛰게 했다.
과당경쟁은 정보의 공급과잉을 초래했다. 디지털 문명은 정보의 생산과 배포가 너무 쉽고 방법도 다양하게 만들어 주었다.
시각 이미지의 공급과잉도 같은 이유에서다. 정보의 양적 팽창은 생각의 시간과 맞바꿔진 것이다.
현대 매체에서 필요한 것은 한 장의 깊이 있는 메시지로서의 사진이 아니라 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장면의 치열한 기록이다.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퍼뜨리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 더미와도 경쟁해야 된다는 조급함, 기사의 취지에 부합하는 장면의 필요성, 다른 회사에서 가진 사진은 우리도 가져야 된다는 관성들이 현장의 기자들을 앞뒤 돌아보지 못하게 했다.
다양한 매체의 숙련되지 않은 의욕들은 대상을 생각하는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되었다.
다양한 매체의 숙련되지 않은 의욕들은 대상을 생각하는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되었다.
방송과 신문, 인터넷 기자들은 때로 저돌적 취재 방식의 결과물을 높이 평가하는 풍토에 휘둘리고 있다.
이번 사고에서 그런 방식의 부작용은 재앙이 되기도 했다. 그것이 일부 자격 없는 기자들과 매체의 과실(過失)이라고 해도 언론은 한 이름으로 비난받을 수밖에 없었다.
진도에 먼저 갔던 선후배들의 혹독한 고생 덕분에 서울에서 비교적 편하게 지냈던 것이 미안하던 차에 뒤늦게 그곳을 다녀오게 되었다. 혼돈의 시간은 흘러갔고, 무거운 적막을 바닷바람 소리가 걷어 젖히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기다림 끝에 아이를 찾게 되어 팽목항을 떠나는 부부의 뒷모습은 억장이 무너지게 했다. 학생의 아버지는 도와준 자원봉사자들과 감사의 악수를 나눈 뒤 무너질 듯한 부인의 팔을 잡아 부축하고 뙤약볕 아래를 걸어갔다. 손에는 옷가지를 담은 쇼핑백 하나가 달랑 들려 있었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교사의 어머니는 부둣가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도에 먼저 갔던 선후배들의 혹독한 고생 덕분에 서울에서 비교적 편하게 지냈던 것이 미안하던 차에 뒤늦게 그곳을 다녀오게 되었다. 혼돈의 시간은 흘러갔고, 무거운 적막을 바닷바람 소리가 걷어 젖히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기다림 끝에 아이를 찾게 되어 팽목항을 떠나는 부부의 뒷모습은 억장이 무너지게 했다. 학생의 아버지는 도와준 자원봉사자들과 감사의 악수를 나눈 뒤 무너질 듯한 부인의 팔을 잡아 부축하고 뙤약볕 아래를 걸어갔다. 손에는 옷가지를 담은 쇼핑백 하나가 달랑 들려 있었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교사의 어머니는 부둣가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먼저 와 있던 사진기자들은 침묵 속에서 근근이 카메라를 들었다. 그들도 깊이 상처받고 있었다.
현장에서의 인간적 괴로움은 물론이고 사진이 어찌하지 못하는 너무 많은 것으로부터의 절망은 깊었다.
그것이 이 길을 택한 사람들의 운명이란 사실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대중이 글을 읽지 않고 이미지만 과잉인 비주얼 시대에 정작 이미지의 생산자와 그 본질은 갈수록 홀대받고 있다.
대중이 글을 읽지 않고 이미지만 과잉인 비주얼 시대에 정작 이미지의 생산자와 그 본질은 갈수록 홀대받고 있다.
언론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쳐 시각 정보, 특히 사진은 중요해졌지만 정작 그 가치는 존중받지 못한다.
불황 속의 사업주들은 더 이상 사진에 돈 들이는 것을 아까워하고, 대중은 만방에 돌아다니는 창작물들을 공짜라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미지는 점점 과잉공급되는 현실이다.
수요자들은 그 언어적 표현보다는 설명적 장면이나 아름다움만을 도구로 취하려 한다.
사진 찍는 사람은 무분별하더라도 더 많은 이미지를 생산해야 하는 기능인으로 바뀌어간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주시해야 되는가 하는 것은 쓸모없는 고민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전히 속보와 다양성 경쟁에서 사진가들은 휴대폰을 이기지 못한다. 넘치는 장면들이 이야기를 이긴 지 오래됐다.
사진기자 혹은 보도사진가들의 미래는 그런 이유로 불안하다. 아니 보도사진의 역할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사진기자 혹은 보도사진가들의 미래는 그런 이유로 불안하다. 아니 보도사진의 역할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사진이 가졌던 신뢰와 장점도 무너지거나 변화할 것이다.
이러한 걱정거리들은 사진 종사자뿐 아니라 언론 산업의 존재 형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급변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는 정보의 유통과 소비 방식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기존 언론들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다각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사진의 양적 비중은 앞으로도 더 커질 것이다.
그러나 사진의 독자성이 얼마나 존중받고 깊이 있는 정보 생산에 기여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것은 사진가들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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