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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205] 축(軸)의 시대

바람아님 2014. 5. 25. 12:15

(출처-조선일보 2013.03.07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대략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200년 사이에 세계의 네 지역에서 인류의 정신에 지대한 공헌을 할 
위대한 전통이 탄생했다. 
중국의 유교와 도교,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이스라엘의 유일신교 그리고 그리스의 철학적 합리주의가
그것이다. 이때는 붓다·소크라테스·공자·맹자·예레미야·'우파니샤드'의 신비주의자들, 에우리피데스와 같은 영적·철학적 천재들이 등장했던, 인간 정신의 역사상 가장 창조적인 시대였다. 
카를 야스퍼스는 이처럼 동일한 시대에 한꺼번에 위대한 영성의 현자들이 등장한 사실에 주목하여 
이 시대를 '축(軸)의 시대(Achsenzeit, Axial Age)'라 불렀다.

그 이전 시대의 고대 종교는 동물 희생을 통해 우주의 신성한 에너지를 보존하는 제의(祭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축의 시대 현자들은 여기에 새로운 윤리적 차원을 더하여, 도덕성을 정신생활의 중심에 놓았다. 
이 시기에 창조된 모든 위대한 전통은 하나같이 자선과 자비가 가장 중요하다는 일치된 결론을 내놓았다. 
하느님, 니르바나, 브라만 또는 도(道)를 찾는 유일한 길은 자비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모든 현자는 인간 존재의 내면 깊은 곳에 윤리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초월적 차원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의 깨달음을 다른 사람에게 생경한 형태로 강요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종교적 가르침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모든 가르침을 자신의 경험 속에 비추어 검증하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행동하느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의 깊은 내면에서 자신을 바꾸는 일이다.

어떻게 여러 문명권에서 동일한 깨달음에 이르렀던 것일까?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폭력, 전쟁, 분열, 살생이 만연했던 때에 이 세상의 평화를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답이 절실히 필요했다. 
'축의 시대'의 저자인 카렌 암스트롱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는 축의 시대 통찰을 넘어선 적이 없다. 
뒤 시대의 사람들이 이 심오한 통찰을 교리 형태로 만들어 강요하는 것은 
축의 시대 동력이 상실된 징표이며, 일종의 타락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오히려 종교 이름으로 전쟁이 터지는 지경이다. 
대량 학살과 자연 파괴, 핵전쟁의 위험을 보노라면 현자들의 가르침에도 인류는 여전히 현명해지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