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3.02.14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빅토르 위고의 소설 제목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은 가련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던 19세기 중엽, 파리를 비롯한 대도시의 뒷골목은 극빈 속에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특히 밑바닥 여성들이 사회의 온갖 모순을 떠안은 채 극도의 고통을 겪었다.
육아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내다버리거나 심지어 살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육아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내다버리거나 심지어 살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런던의 매춘부들은 아이를 탁아소나 쓰레기더미에 버렸다. 19세기의 탁아소나 고아원은 차라리 한편의 지옥도(地獄圖)를 방불케 했다. 아이들은 수면제나 심지어 마취약에 취해 잠이 들었다.
당시 많이 사용되던 고드프리(Godfrey)라는 수면제는 '어머니의 조력자(mother's helper)'라는 시니컬한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의 사망률이 엄청나게 높은 것은 당연했다.
부정직한 업자들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이익을 챙겼다. 아이들에게 보험을 들었다가 죽으면 실제 매장하지도 않고 돈을 타 먹었는데, 어쩐 일인지 보험에 든 아이들만 더 많이 죽었다. 이런 탁아소는 '매장 클럽' 혹은 '천사제조소'로 불렸다.
출산 직후에 아이를 바로 살해하는 영아 살해도 흔했다. 산 채로 땅에 묻거나 목을 조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입에 걸레 조각이나 흙덩이를 집어넣어 질식사시키는 방법이 더 자주 사용되었다.
출산 직후에 아이를 바로 살해하는 영아 살해도 흔했다. 산 채로 땅에 묻거나 목을 조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입에 걸레 조각이나 흙덩이를 집어넣어 질식사시키는 방법이 더 자주 사용되었다.
물론 이런 범죄에 대해 엄격한 처벌이 규정되어 있지만, 판결은 대개 너그러웠다. 피고들은 으레 사산(死産)이었다고 주장했는데, 사형이냐 무죄냐 할 때 배심원은 흔히 무죄를 선택했다. 이 사회가 불쌍한 희생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아(棄兒) 현상도 널리 퍼져 있었다. 대개 밤중에 교회 문 밑에 아이를 두고 가거나 병원의 접수구(接受口· tour : 아이를 놓고 갈 수 있도록 만든 통)에 집어넣었다. 그렇지만 병원이라고 아이들을 잘 돌봐주지는 못했다. 파리의 쿠슈 병원에 맡겨진 아이들 중 한 살이 되기 전에 죽는 비율이 60%에 달했다! 오늘날의 성장과 발전에 얼마나 끔찍한 고통과 희생이 뒤따랐던가. 가련한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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