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디자인·건축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57] 런던 지하철 노선도, 세계 표준이 되다

바람아님 2014. 6. 12. 09:04

(출처-조선일보 2013.09.11 정경원 KAIST 교수·산업디자인)


올해로 150주년을 맞은 런던 지하철이 처음 개통될 때만 해도 노선도를 디자인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노선이 하나뿐이므로
구불구불한 지형적 특성은 물론 역 간의 거리 등을 일반 지도처럼 상세히 그려서 나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새로운 지하철 노선들이 잇따라 신설되고 역이 늘어남에 따라 지하철 노선도는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1932년에 만들어진 최초의 현대식 런던지하철 노선도
1932년에 만들어진 최초의 현대식 런던지하철 노선도

기존의 지도 제작 방식으로 거미줄같이 연결되는 지하철 노선을 표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으므로 시민들은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1930년대에 이르러 런던 지하철공사의 사장이 된 프랭크 피크는 '디자인으로 공공 서비스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신념대로 
해리 베크(Harry Beck)에게 노선도를 새롭게 디자인하도록 했다.

전 세계에서 쓰이는 지하철 노선도는 영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해리 베크가 1930년대에 전기회로도를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처음에는 혹평 받았지만… - 전 세계에서 쓰이는 지하철 노선도는 
영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해리 베크가 
1930년대에 전기회로도를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30대의 노련한 그래픽 디자이너 베크는 기존 지도를 분석한 결과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지하철 노선들과 역들의 위치와 거리 
등을 그대로 나타내려다 보니 직선과 곡선이 뒤엉켜서 복잡하기 짝이 없게 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고심 끝에 베크는 전기 회로도에서 영감을 얻어 노선은 수직, 수평, 대각선으로 하되 주요 역은 정사각형과 마름모꼴로만 
표시하여 간단명료한 지도를 디자인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평회에서 "지도가 아니라 다이어그램 같다"거나 "지리적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혹평이 제기되어 베크의 
노선도는 작은 책자에 '임시용'이라는 딱지가 붙어 조심스럽게 소개되었다. 하지만 베크의 지도에 대한 지하철 이용객들의 
선호는 절대적이어서 곧바로 공식 노선도로 채택되었다. 시민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시각적으로 명료하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래픽 디자인 역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 노선도는 이내 유럽은 물론 미국과 아시아로 전파되어 전 세계 지하철 
지도의 표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