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 번개·달빛이 만든 아마존 사진

바람아님 2014. 9. 12. 10:56

(출처-조선일보 특집 2014.09.12 대구=박원수 기자)

비엔날레 주전시작품 '아마조그라마스'
30m 길이 감광지에 자연의 빛과 플래시
정글의 나뭇잎·날벌레들이 선명하게 찍혀

이 작품 '아마조그라마스'(Amazogramas)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검은색과 흰색만이 있는 '모노크롬' 작품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30m 길이의 긴 인화지에는 정글의 나뭇잎, 줄기, 날벌레들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밀림의 신비로움이 그대로 이 작품에 배어 있는 것이다. 
일반 컬러 사진이라면 이토록이나 신비한 정글의 광경을 포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진의 힘이 이토록이나 위대하다는 사실. 다른 위대한 사진작품처럼 이 '아마조그라마스' 역시나 위대한 
사진작품의 반열에 포함시켜도 전혀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

 1 아마존 정글을 포토그램 작업으로 

형상화한 작품. 흰색과 검은색의 모노크롬 

형태이지만 그안에는 태고적 신비와 원시의 

풍요로움이 공존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부분)

 

2 아마존 정글을 포토그램 작업한 작품의 전체 

모습. 길이가 30m에 이르는 대작이다.

 

3 작품의 배경이 된 아마존 정글의 컬러 사진 

모습. 작품보다 다소 밋밋한 느낌이 든다.


사진을 클릭하면 신문을 스캔한 큰이미지 가능


'아마조그라마스'는 일반적인 사진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방법과 노력으로 탄생했다. 
'포토그램'(Photogram)이라고 불리우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포토그램이란 사진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기법.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감광지와 광원 사이에 물체를 둬서 
그 물체의 형상을 재현하는 방법이다.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

 4 아마존 정글에서 작업을 하는 스탭진들이 

해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방충망을 쓰고 있는 모습. 


5 작업 스탭진들이 폭우로 쓰러진 나무를 

들어올리고 있다. 

이 나무는 감광지 위에 올려 놓는 용도로 사용됐다.


6 쓰러진 나무를 감광지 위에 놓고 작업한 결과물. 

길다란 두루말이 형태를 띄고 있다


이번 제5회 대구사진비엔날레 주전시 작품으로 선보일 '아마조그라마스'의 작가는 페루 출신의 로베르토 후아르카야
(Roberto Huarcaya). 심리학과 영화를 전공한 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사진을 전공한 작가다.

작품이 탄생하게 된 것은 아마존 정글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아마존 정글의 모습을 담을 수 있을까"하며 고민하다가 '포토그램' 작업으로 
정글 모습을 담기로 결정했다. 
그러기 위해 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형태로 할까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구체적인 방식이 손에 익었다. 
작업을 한 곳은 페루의 아마존 정글 중 한 곳. 재규어와 앵무새도 사는 보존지역이었다. 
10여명의 작업자들로 스탭진이 꾸려졌다. 그러나 아마존 정글은 역시 아무에게나 그 속살을 공개하는 곳은 아니었다. 
뱀도 있고 해충들도 들끓었다. 이러한 어려운 작업환경을 무릅쓰고 올해초 로베르토 후아르카야 팀은 현장으로 출동했다. 
아마존 강에 인접한 곳의 밀림에 터를 잡았다.

작업은 이렇게 진행됐다. 
우선 정글 중간중간에 여러개의 폴대를 세웠다. 거기에 길이 30m, 높이 1.1m의 긴 감광지를 붙였다. 
물론 낮 시간대에는 감광지가 노출되면 안되기 때문에 해가 저물어서야 감광지를 부착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감광지에 빛을 반영하지 않는 붉은색 등을 쓰고 작업해야 했다.

빽빽한 정글에는 나무의 잎, 줄기, 나무에 붙어 서식하고 있는 버섯, 날벌레 등 야생의 날것들이 군락을 이루었다. 
밤이 이슥해 적당한 때가 되자 작가는 플래시를 터뜨렸다. 워낙 길이가 길었기 때문에 여러번에 나눠 작업이 진행됐다. 
플래쉬 세례를 받은 정글에 있는 생명체들이 감광지에 그대로 형상화 됐다. 
이뿐이 아니었다. 밀림을 비추고 있는 달빛도 가세했다.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때마침 번개도 쳤다. 
번개의 빛이 감광지를 비추면서 또 다른 정글의 세계가 구현됐다.

주전시의 기획을 맡은 알레한드로 카스테요테(Alejandro Castellote)는 
"감광지에는 플래쉬가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작가가 의도한 것 뿐 아니라 달빛과 번개 등 다른 요소들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이에 덧붙여 "포토그램을 발견한 탈보트가 '자연 그대로 그린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자연이 스스로 그린 그림으로 의도하고 작업한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이 작업 뿐 아니라 홍수로 쓰러진 30m 가량의 거대한 나무도 소재로 사용했다. 
이 나무를 잘라 감광지 위에 얹어 포토그램 작업을 한 것. 
쓰러진 나무는 땅의 영양분을 받고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나무의 순환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작업한 감광지는 현장에서 임시로 만든 스튜디오에서 암실작업을 거쳐 비로소 하나의 완전한 작품으로 탄생했다.
결과적으로 이들 작품들은 자연과 사진매체에 대한 오마주(*.영화에서, 다른 작가나 감독의 업적과 재능에 대한 경의를 담아서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모방하는 일)로 읽혀진다.

한편 대구사진비엔날레 전시장에서는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정글의 어둠을 옮겨왔다. 
그래서 전시장 전체는 어둡고 작품을 비추는 조명만이 전시장을 밝히게 된다. 
3개의 작품으로 구성된 '아마조그라마스'를 관람하는 관객들은 아마도 아마존 밀림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랬다면 올해 대구사진비엔날레는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