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윤평중 칼럼]'내가 누군지 알아?'

바람아님 2014. 9. 26. 10:39

(출처-조선일보 2014.09.26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한국인 권력의지·출세관 반영된 강자가 약자 짓밟는 '甲질' 언어
배려심·공공 의식 갖추지 못한 채 모두가 완장을 향해 질주하지만 권력자 부러워할 뿐 존경은 안 해
민주·평등, 이 癌 없애야 구현돼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세월호 가족대책위 전(前) 간부들의 대리기사 폭행은 착잡하기 그지없는 사건이다. 
세월호가 갖는 엄청난 상징성 때문이다. 
물의를 일으킨 당사자들이 생불(生佛)이나 성인(聖人) 수준이길 바라서가 아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는 있다. 그러나 목격자들의 일관된 증언과 영상 자료로 사건의 전말이 대강 밝혀진 
상황에서 가해자가 흔쾌히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했더라면 지금처럼 일이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진영 논리로 만사를 재단하는 한국 사회의 악습은 이 해프닝에서도 반복된다. 
보수 진영에선 폭행 사고에 격분하거나 비웃으면서 세월호특별법에 대한 반대의 깃발을 높이 든다.
진보 진영에선 가족대책위 간부들의 추태에는 침묵하면서 세월호의 본질이 가려져선 안 된다는 
목소리만 드높다. 
하지만 여기서 의미심장한 것은 사건에 연루된 야당 국회의원이 대리기사에게 했다는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말이다. 
유일하게 폭행을 시인한 가족대책위 전 위원장도 현장에서 '우리가 누군지 알아?'라고 외쳤다고 한다.

'내가 누군지 알아?'는 한국인의 감춰진 성감대이며 우리네 삶을 추동하는 집단 무의식이다. 
남에게 인정받고 위세를 자랑하려는 심리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보편적 인간성의 발로에 가깝다. 
철학자 헤겔은 남들과 동등한 인격으로 대우받고자 하는 인간의 인정(認定) 욕구야말로 역사 발전의 동력이라고 갈파했다. 
인정 욕구가 인간의 자아실현과 민주주의의 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누군지 알아?'는 결코 평등 지향의 민주적 말씨가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다.
'내가 누군데 감히 네 따위가'를 핵심으로 삼는 권력 담론이자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갑(甲)질'의 언어다.

민주 다원 사회인 한국의 이면에는 이런 갑질, 반말의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횡행한다. 
표면적으로는 평등하다고 하지만 안에서는 차별의 파열음이 거세다. 
그 근본적 원인은 우리가 뼛속 깊이 현세적(現世的)이며 권력 지향적인 데서 비롯된다. 
한국인은 지금 여기서 나와 내 가족이 부(富)와 권력을 누리며 잘사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그리하여 물질적 부와 권력이라는 외형적 잣대로 사람을 비교하고 판단한다. 
우리에게 남에 대한 배려와 공공 의식이 희박한 까닭이나 한반도에 유입된 모든 종교가 기복(祈福) 사상에 물드는 근본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높은 관직이 출세의 기준으로 여겨지는 것도 관작(官爵)이야말로 부와 권력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완장'사람을 규정하는 곳에서는 모두가 완장 권력을 향해 질주한다. 
완장 못 찬 사람들은 완장 찬 이들을 부러워하지만 존경하지는 않는다. 
한국인의 삶에 사회적 신뢰와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것은 그 자연스러운 결과다.

인간관계를 힘의 우열(優劣)로 나누어 약자를 얕보는 한국인의 차별적 가치관과 봉건적 집단 무의식을 그 무엇보다 선명하게 
증언하는 것이 바로 '내가 누군지 알아?'다. 대리기사 폭행 사건에서 가해자와 관련자가 우연히 가족대책위 간부들과 
야당 의원이었을 뿐이지 사실 우리 사회는 완장 찬 이들의 이런저런 갑질로 마냥 시끄럽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골프장 
캐디 성추행 사건에 대한 해괴한 변명이나 일부 판검사들의 되풀이되는 폭언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힘으로 상대방을 누르려는 '내가 누군지 알아?'는 궁극적으로 동물의 언어에 불과하다. 
'내가 누군지 알아?'의 반말을 언제라도 발사하려는 사람으로 가득 찬 사회는 동물의 세계와 비슷하다.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일 때 명함이나 신분증을 내미는 우리의 습관도 직위를 과시해 상대방이 알아서 대접해주기를 바라는 
행위다. 한번 '완장'을 찼던 사람을 영원히 그 직함으로 부르는 한국적 미풍양속도 '내가 누군지 알아?' 문화의 연장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가 널리 수용되는 사회는 잔혹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사회다. 
하지만 폭행 사건 피해자인 대리기사의 항변에는 희망의 싹이 엿보인다. 
사회적 약자 중의 약자인 대리기사가 강퍅한 한 의원에게 던진 '국회의원이면 다입니까?'라는 항의야말로 열린 사회의 미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강자(强者)의 난폭한 말씨에 숨은 권력관계를 거부하면서 그 정당성을 묻는 보통 사람만이 사람 사는 
사회를 꿈꿀 수 있다. '내가 누군지 알아?'를 추동하는 한국적 권력 의지와 출세관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암종(癌腫)이다. 추악한 그 암 덩어리를 단호히 끊어내야만 진정한 민주·평등 사회로의 비약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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