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 <2014년 12월17일 34면>
‘조현아 파문’ 대한항공, 기업문화 혁신해야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지난 5일 미국 뉴욕에서 이륙 준비에 들어간 여객기를 회항시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해 국토교통부가 16일 검찰에 고발장을 냈다. 국토부는 대한항공에 대한 운항정지 또는 과징금 처분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운항 담당자가 아님에도 위력으로 비행기를 후진시킨 조 전 부사장의 행동에 대한 법적·행정적 제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국토부는 조 전 부사장의 행동이 ‘승객은 항공기와 다른 승객의 안전한 운항과 여행에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라는 항공보안법 제23조(승객의 협조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국토부는 항공보안법 제46조(항공기 안전운항 저해 폭행죄)에 대한 적용 여부에 대해서는 검찰의 법리적 판단에 따르기로 하고 그동안의 조사 자료 일체를 검찰에 송부했다. 국내외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하고 여론의 뭇매를 맞은 회항 사태가 승객의 안전과 편익에도 위해를 가했다고 정부가 인정한 셈이다.
문제는 국토부가 조 부사장 한 명을 고발하고 대한항공에 불이익을 준다고 이번 사건으로 단단히 상처를 입은 고객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느냐는 점이다. 대한항공은 당시 비행기에 타고 있던 승객 전원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재발 방지책을 내놔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기업문화 혁신이다. 최종 책임은 사건을 일으킨 조 전 부사장이 져야겠지만 고객의 편에 서서 비합리적인 행동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기업문화도 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정당한 절차와 합리적인 판단 근거도 없이 누군가의 일방적인 지시로 비행기가 되돌려질 수 있는 권위적이고 비합리적인 기업문화는 반드시 청산해야 할 구시대의 적폐다. 진정으로 고객을 위한 항공사로 거듭나려면 이것부터 합리적으로 바꿔야 한다. 합리적인 기업문화는 가장 효과적인 위기관리 시스템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은 서비스의 본질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서비스의 핵심은 고객에 대한 배려와 예절일 것이다. 대한항공은 고객 서비스 매뉴얼이 아니라 승객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부터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겨레 <2014년 12월16일 31면>
‘재벌 세습’ 놓아두고는 ‘땅콩 회항’ 반복된다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세 자녀 가운데 맏이인 조 전 부사장은 1999년 미국에서 대학을 마친 뒤 곧바로 대한항공에 입사해 7년 만에 임원 자리에 앉았다. 2011년 대한항공의 객실·기내식·호텔사업 등 세 가지 사업본부의 수장 자리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객실 서비스와 승무 업무까지 총괄하게 됐다. 조 전 부사장이 회사에서 이처럼 빠르게 높은 지위에 올라가게 된 배경은 자명하다. ‘오너 회장의 딸’이기 때문이다.
조 전 부사장의 입사와 승진 경로는, 국내 다른 재벌 3세들의 경우도 거의 다를 바가 없다. 경영 능력이나 자질을 검증받지 않은 채 단지 총수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경쟁없이 회사에 들어가 곧바로 경영 세습 절차를 밟는다. 이런 특혜는 그 자체로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해친다. 스스로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회사 재산을 사유물로 여기고, 임직원들을 부속품처럼 대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경쟁을 뚫고 입사해 밑바닥부터 시작한 다른 직원들과 호흡을 맞추기도 어려워진다.
재벌의 예외없는 경영 세습은 부정과 부패의 위험까지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 총수 가족의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이 마비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총수 가족이 위험에 빠질 경우 합리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결국에는 위기관리 능력의 총체적 부실도 초래한다. 땅콩 회항 사건이 터진 뒤 대한항공이 보인 졸렬한 대응 방식은 좋은 예다. 게다가 견제받지 않는 총수 가족의 권력과 경영 세습은 기업 이익을 외부로 빼돌릴 위험마저 안고 있어 결국 기업가치의 위험까지 초래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만 독특하게 존재하는 기업 형태인 재벌 체제가 우리 경제의 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한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경제 규모가 이미 커지고 재벌 총수 가족 경영이 3세로까지 넘어가는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단지 총수의 자녀라고 해서 무조건 경영에 참여하고 경영권을 승계받는 관행은 이제 끝나야 한다.
[논리 vs 논리] “권위적 조직문화 탓” vs “재벌 3세 경영 세습 문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강서구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 출석하기 전 ‘땅콩 회항’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시중에선 일명 ‘조현아 땅콩’으로 불리는 ‘마카다미아’란 견과류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견과류가 여객기를 회항시킨 원인이었다는 언론 보도에 영향을 받은 탓이 크다. 그러나 문제는 이 견과류가 아니었다. 기내서비스에 대해 승객은 얼마든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 조 전 부사장도 대한항공 부사장이 아니라 한 사람의 승객으로 승무원에게 정당한 서비스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그러나 개인적인 불만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여객기를 회항시켜 사무장을 내리게 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한겨레와 중앙은 모두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다루고 있지만 문제의 원인과 해법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다. 한겨레가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을 ‘재벌 3세의 경영 세습 관행’으로 파악하고 있다면 중앙은 ‘권위적이고 비합리적인 기업문화’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자세히 들여다보자.
한겨레는 우선 이번 사건을 ‘땅콩 회항’으로 명명한다. 사소한 기내서비스에 불만을 가진 승객이 ‘재벌 3세’가 아니라면 여객기를 돌려 사무장을 내리게 할 수 있느냐는 의미가 숨어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능력과 자질을 검증받지 않은 재벌 3세의 경영 세습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중앙은 조 전 부사장의 행동이 항공보안법에 해당하는지는 검찰이 법리적으로 판단할 문제이며 정부가 이번 사태를 ‘승객의 안전과 편익에 위해를 가한’ 사건으로 인정한 셈이라고 판단한다. 중앙이 국내외의 망신과 여론의 뭇매를 맞은 회항 사태를 조 전 부사장의 위법한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한겨레는 ‘조현아’라는 개인이 아니라 재벌 세습 경영의 문제에 방점을 찍고 있다.
또한 한겨레는 ‘오너 회장의 딸’이 아니라면 조 전 부사장이 객실서비스와 승무업무까지 총괄하는 자리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라며 국내 다른 재벌 3세들도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스스로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회사 재산을 사유물로 여기고 임직원들을 부속품처럼 대하는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총수의 가족이 위험에 빠질 경우 합리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결국에는 위기관리 능력의 총체적 부실도 초래’한다고 질타한다.
반면에 중앙은 ‘고객의 편에 서서 비합리적인 행동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기업문화’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권위적이고 비합리적인 기업문화는 반드시 청산해야 할 구시대의 적폐’라고 지적하면서 합리적인 기업문화가 가장 효과적인 위기관리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최종 책임은 조 전 부사장이 져야겠지만 기업문화 혁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단지 총수의 자녀라고 해서 무조건 경영에 참여하고 경영권을 승계받는 관행’을 끝내야 한다는 한겨레와 ‘당시 비행기에 타고 있던 승객 전원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재발 방지책이 있어야 하며 고객 서비스 매뉴얼이 아니라 승객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부터 갖춰야 한다’는 중앙은 해법은 상당히 다르다.
이번 대한항공 여객기 회항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다. 단순히 기내 서비스 불만 표출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재벌 3세의 세습 경영, 국토부와 항공사의 유착, 전근대적 기업 문화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좀 더 꼼꼼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류대성/용인 흥덕고 국어교사
류대성 용인 흥덕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