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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코리아] 청년들, 무릎은 꿇지 마라!

바람아님 2015. 1. 9. 10:48

(출처-조선일보 2015.01.09 강경희 사회정책부장)


강경희 사회정책부장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여진이 가시기도 전에 모녀가 백화점 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주차요원들을 무릎 꿇린 상황이 알려져 네티즌들이 시끌시끌했다. 
당초 이 사건은 주차요원의 누나가 분한 마음에 SNS에 사연을 올리면서 퍼졌다. 
젊은이가 한겨울에 주차장 바닥에 무릎 꿇은 사진은 누가 봐도 안타깝고 분노가 치밀었다. 
목격자가 "현대백화점 조카랬던가 뭐라던가" 
"VIP 고객" 운운한 바람에 처음엔 조현아 못잖게 힘 있거나 돈 있는 모녀가 
주차요원들을 1시간 넘게 무릎 꿇리고 뺨도 때린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한 사실관계가 드러나기도 전에 '제2의 조현아'라는 표적이 돼 집단 분노가 쏟아졌다.

시간이 지나 하나씩 드러난 상황은 다른 측면도 있다. 
모녀는 현대백화점 오너의 친인척도, VIP 고객도 아니었다. 
모녀의 처신이 심했던 건 사실이지만 당초 주차요원이 허공 주먹질을 해 오해 살 소지도 있었다고 알려졌다. 
처음 쏟아진 집단 분노보다는 화력(火力)이 한풀 꺾여 '일상의 갑질' '백화점 진상 손님' 정도로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의 모녀는 여론의 몰매를 맞았고 경찰 조사까지 진행되고 있다. 
무릎 꿇었던 청년들이 그걸로 다소 위안받았을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굴욕감이 쉬 가시지는 않을 것이다. 
굴욕감이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당했다고 여길 때 드는 감정이다. 
스위스 철학자 페터 비에리는 저서 '삶의 격'에서 존엄성을 지켜나가는 삶이란 "거센 중력장 한가운데서 스스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쓸 때처럼 무척 힘든 일"이라고 했다. 
그에 의하면 존엄한 삶의 형태란 내가 타인에게 어떤 취급을 받느냐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라 
내가 타인을 어떻게 대하느냐, 그리고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의 세 가지 차원이 모아져 형성된다.

갑질이 횡행하고 완장 문화가 판치는 사회는 맞다. 무례한 타인 때문에 존엄성을 훼손당할 소지도 높다. 
이 저급한 의식구조를 뜯어고쳐야 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상은 멀고 현실은 가까워 종종 여기저기서 완장 찬 갑질이 튀어나온다. 
특히 사회생활의 밑천이 짧은 청년들한테는 사회 전체가 고참이요 죄다 어른인 상황이라 그 갑질 펀치에 맞을 소지도 크다. 
그럴 때마다 청년은 무릎 꿇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사진 찍어 SNS로 퍼뜨려주고, 
누나가 방송사에 고발해준다고 무너진 존엄성이 회복되지는 않는다.

무릎 꿇은 청년 사진을 보면서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한 선배로서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무릎은 뻣뻣해도 된다. 대신 목은 늘 부드럽게 먼저 숙여라."

존엄을 결정짓는 세 차원 중에 
첫 번째 잣대로 보면 우리 사회는 너무나 거칠고 무례해 한 개인의 존엄성이 타인에 의해 시시때때로 위협받는다. 
그래도 두 번째 잣대, 즉 내가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공손하고 정중한 언행으로 먼저 고개 숙이면 날아오는 짱돌에 
이마 맞지 않고 피해갈 확률도 제법 커진다. 
그리고 마지막 잣대다. 경배하는 신(神)이나 부모님, 법 앞에서 잘못을 뉘우치거나 공경하기 위해 스스로 무릎 꿇는 게 
아니라면 부조리한 상황에는 억지로 무릎 꿇지 않겠다는 오기와 자존감으로 서 있어야 이 현기증 나는 사회에서 
가까스로 존엄성의 균형을 붙잡고 걸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