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1.17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일본에 복(福)자가 들어간 일곱 개의 성(姓)이 있다. 후쿠오카·후쿠시마·후쿠야마·후쿠다·후쿠하타·후쿠카이·후쿠즈미
(福岡·福島·福山·福田·福畑·福海·福住)가 그들인데, 원래 서복(徐福)의 일곱 아들 이름이었다고 한다.
의약·천문·지리에 능하였던 서복은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에게 글을 올렸다.
의약·천문·지리에 능하였던 서복은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에게 글을 올렸다.
"신선이 사는 동해의 섬에 가서 불로초를 구해오겠다"는 내용이었다. 진시황의 허락을 얻은 그는 동남동녀(童男童女)
수백 인을 데리고 출항했다. 그러나 그는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일본에 정착해 농업·어업·의술 등을 전파하여
일본 문화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전설이 사실임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일본에는 관련 유적이 많다. 서복의 최초 상륙지와 무덤, 서복을 모시는 신사,
이 전설이 사실임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일본에는 관련 유적이 많다. 서복의 최초 상륙지와 무덤, 서복을 모시는 신사,
서복학회 등이 수십 개 있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인가에 대해서는 한·중·일 3국 전문가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일본 정사(正史)인 고지키(古事記)·니혼쇼키(日本書記) 등에 서복에 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일본이 서복 전설을 확산시키는 것은 자기네 문물이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중국에서 직접 전래되었음을 강변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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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떻게 서복공원이 제주에 세워졌을까? 1997년 당시 국회 문광위 위원장을 맡고 있던 이세기 의원에 의해서였다.
정치인이기 이전에 정치학자였던 그는 한·중수교(1992) 이후 중국 지도층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그들의 동선을 유심히
살폈다. 그런데 많은 주요 인사가 제주도에서 하룻밤 머무는 것을 발견했다.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리펑(李鵬)·
류윈산(劉云山)·차이우(蔡武) 등 예외 없이 제주도를 방문했다. 시진핑 당시 저장성 당서기도 마찬가지였다.
풍수사(風水史)적으로 제주에 대한 중국인의 관심은 서복뿐만 아니다. 송나라 때의 풍수 호종단(胡宗旦·고려 예종 때
풍수사(風水史)적으로 제주에 대한 중국인의 관심은 서복뿐만 아니다. 송나라 때의 풍수 호종단(胡宗旦·고려 예종 때
귀화해 풍수 관리로 활동)도 제주와는 밀접한 인연을 맺는다. 제주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제주도에 대한 중국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확인한 이세기 당시(1997년) 문광위 위원장은 문광부와 서귀포시를 설득해
국비로 서복공원을 조성케 한다. 서복공원이 조성된 이후 더 많은 중국인이 제주와 이곳을 들렀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중국의 지도자들이 제주도를 다녀간 이후 승승장구한 일이 아주 많다"고 이세기 전 위원장은 술회했다.
승승장구한 중국 지도자들의 구체적인 이름은 지금도 현직에서 활동 중이기에 밝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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