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음악칼럼 269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가정음악

국제신문 2022. 02. 15. 22:30 19세기 초 유럽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시작된 왕정제의 몰락과 전쟁의 광풍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웠다. 나폴레옹의 패배로 전쟁은 끝났지만 전후 열강은 혁명의 재발을 막고 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재상이었던 메테르니히의 주도 아래 비밀경찰, 언론 검열 등 삼엄한 정국을 형성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로 인해 정치에 환멸을 느낀 소시민에겐 비정치적 퇴영적 풍조가 만연하게 된다. 낭만의 초·중기에 걸친 1815~1848년 약 30년의 이 시기를 비더마이어(Bidermeier) 시대라고 특별히 구분하기도 하는데 ‘우둔하고 고루한 사람’이란 뜻의 이 독일어는 원래는 당시의 퇴행적인 소시민적인 생활양식을 뜻하는 약간은 비하적인 의미였다. 온화함과 경건주의가 새로운 미덕..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99]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조선일보 2022. 02. 14. 03:03 Sting 'Englishman in New York'(1987) “겸손과 예의가 비난받을 수 있어요/ 결국 홀로 남겨질지도 몰라요/ 관대함과 냉철함은 이 사회에 드물죠/ 밤이 되면 태양보다 촛불이 더 밝으니까요.” 스팅이 1987년에 발표한 이 노래엔 15세기 이래 영국 ‘젠틀맨’의 브랜드가 된 ‘manners maketh man’이란 표현이 그대로 나온다. 이 말은 우리나라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영화 ‘킹스맨’에도 나와 유명해졌다. (중략) 스코틀랜드가 낳은 이 두 종목의 철학적 공통점은 심판이 없는 경기라는 점이다. 물론 올림픽 같은 공식 대회엔 형식적으로 심판이 있지만 경기엔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경기 진행은 대부분 선수들의 합의로 이루어진다. 컬링의 ..

계승과 창조의 조화, 슈베르트[클래식의 품격/나성인의 같이 들으실래요]

동아일보 2022. 02. 08. 03:02 슈베르트는 한때 베토벤에게 거리를 뒀다. 존경하면서도 스승 살리에리의 의견을 따라 과장이 많고 거친 작곡가라 여겼다. 그러나 1824년 5월 7일의 역사적인 ‘합창’ 교향곡의 초연을 보고 난 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어떻게 하면 베토벤처럼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이것은 슈베르트 필생의 과업이 되었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베토벤과는 다른 성정의 사람이었다. 대립시키고, 확장시키고, 마침내 극복하는 베토벤의 스토리텔링은 서정적이고 상냥한 슈베르트와는 맞지 않았다. 이듬해 슈베르트는 가스타인과 그문덴에서 여름을 보내며 새로운 교향곡을 기획했다. 베토벤처럼 위대한 작품을 쓰려면 그와는 다르게 가야 했다. 이 교향곡이 바로 슈베르트의 여덟 번째 ‘대교향곡’(일..

[안종도의 음악기행 <58> 하이네의 시, 슈만의 멜로디가 만난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사랑의 봄날'을 다룬 가사에 '쓸쓸한 멜로디' 입힌 로베르트 슈만

이코노미조선 2022. 01. 24. 19:04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꽃봉오리가 피어날 때 내 마음 안에 사랑이 싹트고 있었네.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새가 노래할 때 내 동경과 갈망을 그녀에게 고백했네.” 학생들이 들은 가곡은 독일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이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Dichterliebe)’에 담은 첫 번째 곡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Im wunderschoenen Monat Mai)’다. 슈만은 독일 낭만주의 시대 시인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서정 시집 ‘서정적 간주곡(Lyrisches Intermezzo)’에 실린 시를 모티브로 이 곡을 만들었다. 그야말로 독일 낭만주의 시대 두 거장의 시와 음악이 만나 또 다른 걸출한 예술작품이 탄생한 셈이다. 필자는 ..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98] 거리 두기

조선일보 2022. 02. 07. 03:01 Bette Midler 'From a Distance'(1990)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세가 무섭다. 설 연휴 뒤 첫 주말에 하루 4만명에 육박하는 확진자가 발생했고, 대한민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100만명을 돌파했다. 물론 인구의 20%가 감염된 미국이나 이에 근접한 유럽 국가들보다는 훨씬 낮은 수치이긴 하지만 또 어떤 새로운 상황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략) ‘From a Distance’는 케이블 방송사의 비서로 일하던 줄리 골드가 쓴 곡으로, 1987년 낸시 그리피스가 먼저 불렀지만 3년 뒤 벳 미들러가 다시 부른 버전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특히 걸프전에 참전 중이던 미군 병사들이 이 노래를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 이듬해 이 노래는 그..

거슈윈 '랩소디 인 블루'와 휘슬러 '녹턴 연작'[미술과 음악의 하모니/윤지원]

동아일보 2022. 02. 04. 03:03 명절을 맞은 기차역은 평소보다 북적이는 사람 소리와 기차 파열음으로 가득했다. 열차에 오르자 요란한 소리는 멀어지고,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는 기차 바퀴 소리가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어냈다. 이 리듬 속에서 곡 하나를 떠올렸다. 조지 거슈윈(1898∼1937)이 1924년경 작곡한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다. “열차 바퀴의 강철 같은 리듬과 덜컹거리는 소리는 종종 작곡가들에겐 영감을 준다. 그 소리들에서 갑자기 음악이 들렸다. 전체적인 음악의 구성이 떠올랐고, 심지어 ‘랩소디 인 블루’가 처음부터 끝까지 적힌 악보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거슈윈) https://news.v.daum.net/v/20220204030351058 거슈윈 '랩..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97]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타타르인

조선일보 2022. 01. 24. 03:01 Jamala '1944′(2016) “낯선 이들이 집으로 들이닥쳤고/그들은 모두를 죽였다/그들은 정당하다고, 죄가 없다고 말했다/휴머니즘은 통곡한다/그대들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동안에/모두가 죽었다…” 2016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크림반도 출신의 타타르계 우크라이나 가수 자말라는 강력한 경쟁자인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자레프를 누르고 우승한다. 2014년 크림반도 강제합병으로 인해 러시아와 힘겨운 국지전을 벌이고 있던 우크라이나는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러시아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정치성을 띤 노래를 규제한다는 전통적인 정신을 들어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지만 대회 주최 측은 문제가 없다고 논란을 일축하고 자말라의 손을 들어준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과 음악이 만날 때 [조은아의 낮은음자리표]

한국일보 2022. 01. 20. 20:00 여기 미술관에 울려 퍼지면 좋을 음악은 어떤 곡일까. 동료 피아니스트와 함께 말레비치의 '피아노를 연주하는 여인'이란 그림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제목만 보고 무언가 동일 직종의 공감을 기대했건만, 두 사람 공히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피아니스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갈기갈기 해체되어 있고 구석의 검은 건반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심지어 미리 예습해 찾아본 그림과 달리 위아래 방향도 뒤집혀 걸렸는데, 그만큼 감상에 따라 모든 해석이 가능한 추상화 특유의 불확정성이 확연히 전달되는 듯했다. https://news.v.daum.net/v/20220120200015402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과 음악이 만날 때 [조은아의 낮은음자리표] 러시아 아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