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詩와 文學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51>한수위

바람아님 2014. 8. 22. 10:23

 

 

한 수 위
―복효근 (1962∼)

어이, 할매 살라먼 사고 안 살라면 자꼬 만지지 마씨요

―때깔은 존디 기지*가 영 허술해 보잉만

먼 소리다요 요 웃도리가 작년에 유행하던 기진디 우리

여펜네도

요거 입고 서울 딸네도 가고 마을 회관에도 가고

벵원에도 가고 올여름 한려수도 관광도 댕겨왔소

물도 안 빠지고 늘어나도 않고

요거 보씨요 백화점에 납품허던 상푠디

요즘 겡기가 안 좋아 이월상품이라고 여그 나왔다요

헹편이 안 되먼 깎아달란 말이나 허제

안즉 해장 마수걸이도 못했는디

넘 장사판에 기지가 좋네 안 좋네 어쩌네

구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허들 말고

어서 가씨요

―뭐 내가 돈이 없어 그러간디 나도 돈 있어라

요까이껏이 허면 얼마나 헌다고 괄시는 괄시요

팔처넌인디 산다먼 내 육처넌에 주지라 할매 차비는

빼드리께

뿌시럭거리며 괴춤에서 돈을 꺼내 할매 펴보이는 돈이

천원짜리 구지폐 넉 장이다

―애개개 어쩐다요

됐소 고거라도 주고 가씨오 마수걸이라 밑지고 준 줄이나

아이씨요잉

못 이긴 척 배시시 웃는 할배와

또 수줍게 웃고 돌아서는 할매

둘 다 어금니가 하나도 없다
*기지: 옷감, 천


지문도 대사도 시추에이션도 재밌어서 읽는 즐거움을 주는 시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랬다’는 속담이 있는데, 옷 장수 할배와 손님 할매가 서로 살살 속을 긁는 게 아슬아슬 싸움 근처여서 한층 생동감 있는 흥정, ‘밀당’의 풍경이 익살스럽게 펼쳐진다. 정가제와 대기업슈퍼마켓(SSM)에 밀려 요새는 거의 사라진 재래시장의 이런 풍경, ‘천 원짜리 구지폐 넉 장’처럼 시골장터에서나 볼 수 있을까.

부르는 값의 반은 뚝 깎아야 흡족하실 할머니의 괴춤이 궁금하다. 그럴 줄 알았을 할아버지의 푸근한 합죽웃음이여. 할배, 진짜 밑지고 주신 건 아니었죠?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