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詩와 文學

“밝은 詩 고르기가 무척 힘든 세상이네요”

바람아님 2014. 8. 21. 10:35

22일 300회 맞는 동아일보 ‘행복한 시읽기’의 황인숙 시인

황인숙의 시읽기는 정답다. 김민정 시인은 산문집 ‘각설하고,’에서 황 시인을 ‘아무런 작정 없고

그 어떤 목적 없이 누군가에게 향하는 그 마음 그대로가 아름답다는 걸 알려준 언니’라고 썼다.

2012년 9월 12일부터 주 3회씩 동아일보 오피니언면에 연재 중인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가 22일 300회를 맞는다. 그의 시읽기는 집밥이다. 평범한 일상인 듯한데 입에 착 감긴다.

300회 원고를 준비 중인 황인숙 시인(56)을 20일 서울 용산구 갈월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인은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의 원고를 담당하는 기자와는 집전화나 e메일로만 연락한다. ‘수요일 오후 3시 지하철역 2번 출구 근처 카페에서 만나요.’ 아날로그식 약속이다.

―시인이니까,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그냥 원치 않는 전화를 받기 싫어서예요. 전화를 거는 사람은 제일 통화하기 좋은 시간에 걸지만 받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받기 싫을 때 전화를 받으면 나만 점수 깎이겠다 싶어서 집전화도 전화사서함으로 돌리고 벨소리도 죽여 놓아요.”

―매주 3회(월·수·금) 시를 고르고 읽어 주는 일이 쉽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오래할 줄 몰랐는데…. 무척 힘들지만 그래도 재밌어요. 처음에는 일주일 치를 미리 써두곤 했는데, 요즘은 마감하는 날 간신히 한 회를 보내요. 그래도 시집과 문예지는 열심히 성의껏 읽고 있어요.”

―처음 연재할 땐 아침에 읽기 좋게 밝은 시를 고르겠다고 했는데….

“별로 밝을 일이 없는 세상이니까 밝은 느낌이 나는 시를 소개해보자는 뜻이었는데 정말 드물더라고요. 또 시가 마냥 밝을 수도 없어요. 슬픔이나 고통에서 진국이 우러나는 게 시란 장르의 특징 같아요. 시를 고를 땐 이왕이면 덜 알려진 시인을 소개하려고 해요. 딱 이 시다, 느낌이 오면 기뻐요. (읽는 독자에겐) 오늘 하루 여기서 쉬어 가시라, 이런 마음입니다.”

―시 읽기는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점쟁이가 작은 수정 구슬을 들여다보는 일과 같아요. 구슬 안에 삶과 운명, 신비 등이 보이죠. 시 안에는 한 사람이 담아내는 세계가 있어요. 그 시에 자기 인생도 비춰보며 자기 세계를 깊게 하고 넓힐 수 있겠죠.”

―300편의 시 중에 가장 재밌는 시는….

“칠레 시인 니카노르 파라가 쓴 ‘주님의 기도’예요(2013년 11월 15일자). 주기도문을 빗대 쓴 시죠.”(황 시인은 당시 ‘시인이 날리는 마무리 펀치를 보라. 주기도문의 주(主)는 유일신인데, ‘신들도 때로는 잘못을 저지르며’라고 ‘One of Them’을 만들어 버린다‘고 소개했다)

―본업이 시인이고 소설과 수필도 여러 편 썼는데 새 작품 계획은….

“새 시집 원고를 진작 넘겼어야 했는데, 시를 저장해둔 이동식저장장치(USB)가 고장났어요. 용산전자상가에서 파일을 복구해야 하는데 여태 가질 못했네요. 말이 나온 김에 빨리 해야겠네요.”

황 시인은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김수영문학상과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