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82>지상의 방 한 칸 지상의 방 한 칸 ―이시영(1949∼) 신림 7동, 난곡 아랫마을에 산 적이 있지. 대림동에서 내려 트럭을 타고 갔던가, 변전소 같은 버스를 타고 갔던가. 먼지 자욱한 길가에 루핑을 이고 엎드린 한 칸 방. 누나와 조카 둘과 나의 보금자리였지. 여름밤이면 집 앞 실개천으로 웃마을 돈사의 돼지.. 文學,藝術/詩와 文學 2014.09.25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81>철새 철새 ―윤후명 (1946∼) 철새들 乙乙乙 날아간다 乙乙乙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러나 乙乙乙 고개를 들라고 날개를 친다 모름이 곧 앎이니 날아갈 뿐이니 삶이 곧 낢이니 날개를 친다 너는 어느 땅에 붙박혀 있는가 묻는 상형문자 乙乙乙 음역하여 내.. 文學,藝術/詩와 文學 2014.09.24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80>하염없이 하염없이 ―양선희(1960∼) 누가 반쯤 가린 세상을 보려고 나는 창을 닦기도 하고 일간지와 주간지와 월간지와 계간지를 정기구독해서 숙독하기도 하고 라디오와 텔레비전 뉴스를 경청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소주를 나눠 마시며 역사와 광기를 얘기하기도 하고 담배연기로 혀끝에 감기는 .. 文學,藝術/詩와 文學 2014.09.23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79>앙상블 앙상블 ―황병승(1970∼) 골방의 늙은이들은 우물쭈물하지 죽음이 마치 올가미라도 되는 양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울음을 터뜨리는 아가들 인생이 마치 가시밭길이라도 되는 양 알약을 나눠먹고 밤거리를 배회하는 소녀들 환각이 마치 지도라도 되는 양 편지를 받아든 군인들은 소총.. 文學,藝術/詩와 文學 2014.09.21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77>농약상회에서 농약상회에서 ―함민복(1962∼ ) 치마 아욱 마니따 고추 장한 열무 제초대첩 제초제 부메랑 살충제 아리랑 쥐약 먹을 것 생산해줄 씨앗들과 먹을 것 먹어치우는 것들 죽일 약들 극명하게 갈라놓았다 향기롭던 음식도 먹을 수 없게 되면 역한 냄새로 판별하는 내 감각 반성해보다 슈퍼 옥수.. 文學,藝術/詩와 文學 2014.09.19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76>물소리 물소리 ―황동규(1938∼) 버스 타고 가다 방파제만 바다 위에 덩그러니 떠 있는 조그만 어촌에서 슬쩍 내렸다. 바다로 나가는 길은 대개 싱겁게 시작되지만 추억이 어수선했던가, 길머리를 찾기 위해 잠시 두리번댔다. 삼십 년쯤 됐을까, 무작정 바닷가를 거닐다 만난 술집 튕겨진 문 틈서.. 文學,藝術/詩와 文學 2014.09.18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75>봄밤 봄밤 ―최승호(1954∼) 창호지로 엷은 꽃향기 스며들고 그리움의 푸른 늑대가 산봉우리를 넘어간다. 늘 보던 그 달이 지겨운데 오늘은 동산에 분홍색 달이 떴으면. 바다 두루미가 달을 물고 날아 왔으면. 할 일 없는 봄밤에 마음은 멀리 멀리 천리(千里) 밖 허공을 날고 의지할 데가 없어 다.. 文學,藝術/詩와 文學 2014.09.17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74>심었다던 작약 심었다던 작약 ―유희경 (1980∼) 네가 심었다던 작약이 밤을 타고 굼실거리며 피어나, 그게 언제 피는 꽃인지도 모르면서 이제 여름이라 생각하고, 네게 마당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그게 아니면, 화분에다 심었는지 그 화분이 어떻게 허연빛을 떨어뜨리는지 아는 것도 없으면서 네.. 文學,藝術/詩와 文學 2014.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