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2.28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천지사방에서 울부짖는 사자들이 날뛴다. 그 사이를 헤집고 미친 듯이 질주하는 전차가 있다.
전차를 이끄는 말들은 바닥에 쓰러진 사자를 피해 뛰어오르고, 화살을 맞아 궁지에 몰린 사자가 전차 위로 달려든다.
이 와중에 전차 위에 꼿꼿이 서서 몸을 뒤로 돌려 여유 있게 활을 겨누는 이가 있다.
바로 아시리아의 왕, 아슈르나시르팔 2세(Ashurnasirpal II·기원전 883년~기원전 859년 재위)다.
그의 모습은 용맹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우아하다.
-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사자 사냥, 기원전 9세기 중반,
- 알라바스터, 224×88.6㎝, 런던 영국 박물관 소장.
오늘날의 중동 지역인 메소포타미아를 차지했던 왕국으로 특히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는 현재 이라크 북부에 해당되는 님루드로 수도를 옮기면서 궁전을 새로 지었다.
이 사자 사냥 장면은 궁전 벽면을 장식한 대리석 부조(浮彫)의 일부로, 기나긴 벽에는 수백 마리의 사자들이 처절하게
죽어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그 앞에 서면 마치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귀를 찢는 맹수들의 포효가 들리는 것 같다.
기록에 의하면, 왕이 한 번의 사냥에서 죽인 사자가 자그마치 450마리라고 한다.
사자 사냥은 전통적인 왕의 스포츠였다. 왕은 이미 포획된 사자들을 정원에 풀고 완전 무장한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사자 사냥은 전통적인 왕의 스포츠였다. 왕은 이미 포획된 사자들을 정원에 풀고 완전 무장한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마음 놓고 사자를 잡았던 것이다. 과거 유목민이었던 아시리아인들의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권능은 다른 무엇도 아닌,
맹수로부터 백성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무력(武力)이었다. 따라서 왕들은 더 이상 유목민이 아닌 시절에도 과거의 전통을
따라 행사처럼 굳어진 사자 사냥을 통해 권력을 증명했던 것이다. 따라서 작품 속 사자들은 죽더라도 용맹하고 위엄 있게
죽어간다. 하찮은 동물을 잡고서 권력자연(然)할 수는 없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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