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5-4-21
국내 최대 벚꽃 축제로 꼽히는 '진해군항제'가 절정을 이룬 지난 8일 오후. 벚꽃 명소 중 하나로 꼽히는 경남 창원 경화역에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시간당 2000~ 3000명이 몰려든 이날 경화역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역사(驛舍)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철길 위로 올라갔다. 이때 스피커에서 "곧 열차가 통과할 예정이니 안전에 유의해달라"는 방송이 두 번 반복해 나갔다. 진해 방향으로 가는 기차가 경화역 쪽으로 다가오기 직전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자 역 관계자와 안전요원 등 20여명이 다급하게 "물러나세요. 위험해요"라며 관광객들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안전요원이 자기 앞을 지나가기 무섭게 다시 철길 쪽으로 다가가 사진 찍기에 바빴다. 달리는 기차와 불과 1m 떨어진 곳에서 2세짜리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는 가족이 있었다. 한 안전요원은 "기차가 오면 비키는 게 아니라 철도로 더 몰려든다"며 "'사진 한 장에 목숨 걸지 말라'고 해도 '나는 안 죽는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 안전 시스템을 뜯어고치고 시민들의 안전 의식을 새롭게 다지자는 분위기가 일었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안전 불감증을 앓고 있다. 실제 세월호 침몰 이후 지난 1년간 크고 작은 안전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를 만들겠다"며 "세월호 구조 책임을 물어 해양경찰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하겠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주일 뒤 경기도 고양 종합버스터미널에서 화재가 발생해 9명이 숨지고 60명이 부상했다. 지하 푸드코트 리모델링 공사 과정에서 용접 불티가 튄 게 발화의 원인이었지만 당시 근로자들이 안전 매뉴얼을 무시하고 방화셔터와 스프링클러를 꺼놓아 인명 피해를 더 키웠다.
이 사고 이틀 뒤엔 전남 장성 요양병원에서 방화 사건이 발생해 22명이 숨졌다. 이 병원에는 아예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정부는 뒤늦게 모든 요양병원에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인태 화재보험협회 박사는 "참사가 발생하면 정부는 안전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내걸지만, 평소에 위험 요소를 파악해 하나씩 고쳐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형 사고만 나면 당국의 관리·감독 부실을 통탄하면서도 "나는 괜찮겠지" 하는 시민들의 느슨한 안전 의식도 문제다. 지난해 10월 경기도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 축제에서 환풍구 위에 올라가 아이돌 공연을 관람하던 시민이 추락해 16명이 숨진 것도 이런 지적을 받았다. 당시 행사 사회자가 "환풍구는 위험하니 내려오라"고 안내 방송을 했지만 시민들은 듣지 않았다. 사망자 대부분이 20~40대 성인이었던 이 사고에 대해 이원호 광운대 건축과 교수는 "안전 의식이 부족한 후진국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안전 불감 사고였다"고 했다.
지난달 5명이 목숨을 잃은 강화도 캠핑장 화재 사고도 업주와 투숙객의 안전 불감증이 겹쳐 발생한 사고였다. 사고 캠핑장 업주는 투숙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텐트 안에 각종 가전제품·전열기구를 집어넣어 화재 원인을 제공했다. 투숙객들도 '텐트 안에서 화재 요인이 될 수 있는 제품을 쓰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안전 상식이 부족했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나는 괜찮겠지 하며 '안전 무임 승차자'가 되려는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며 "시민 스스로 '내 안전은 내가 지킨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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