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05.05
디자이너, 디자인을 넘다 ② 김빈 빈컴퍼니 대표
플라스틱 간이 홀더 ‘드링클립’ … 뉴욕·런던서 호평 받으며 주목
데뷔작 드링클립은 사무 공간의 확장을 꾀한 스마트 상품이다.
# 1 스크린에 태극기가, 이어 전쟁 고아 사진이 떠올랐다. 2013년 런던, 영국의 산업박람회 ‘100% 디자인 런던’ 측이 마련한 한국 젊은 디자이너들의 좌담회에서다. “무엇이 한국 디자인일까요?” 김빈(33) 빈컴퍼니 대표가 청중에게 물었다. 박물관에 모셔진 고려청자·지승그릇의 사진도 보여줬다. 한때의 일상 집기들이다. 우리는 왜 이 같은 디자인 유산을 향유하지 못할까.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며 끊어진 전통을 현대 디자인에서 이어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2 1일 서울 삼청로 무봉헌, 한옥 실내에 새소리 울리는 숲이 설치됐다. 단청에서 모티브를 얻은 한지 디퓨저가 주렁주렁 열려 매화향을 풍겼다. 바닥엔 색색의 단청 매트를 깔았다. 김빈의 전시다. 개막에 참석한 손님들은 장판지로 만든 그릇에 담긴 단청 무늬 다식을 즐겼다. 전통을 화두로 수년 간 고민해 오던 바를 공감각적 체험 전시에 녹였다.
스물아홉에 빈컴퍼니를 창업한 김빈 디자이너.
김빈은 여기서 더 나아갔다. 실은 “드링클립으로 번 돈을 이렇게 까먹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파리 메종&오브제, 밀라노 가구박람회 등 해외의 디자인 페어에 잇따라 참가하면서 “무엇이 한국 디자인인가”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우리 전통 디자인의 단절이 보였다. 2010년 한지 상품 개발 디자인 토너먼트에 참여하면서 전주에서 한지 만드는 과정을 보게 됐다. 한지 소재의 멋스러운 수납 제품 ‘한지 바스켓’을 만들었고, 브랜드 ‘미츠(Meeets·美錘)’를 론칭하며 한지·단청·매듭 등 우리 전통문화 콘텐트를 현대 생활에 접목한 상품을 내놓았다. “드링클립으로 첫해에 많이 벌었지만 많이 까먹었어요. ‘미츠’가 재미있어요. 재작년까지는 어려웠지만, 작년부터 성장하고 있습니다.”
방바닥에 까는 장판지를 이용해 명함지갑, 테이블 매트 등 오늘날의 생활용품을 디자인한 ‘JPJ 시리즈’(사진 위쪽), 콩기름을 먹인 종이는 생활 방수 기능을 가진 친환경 소재가 됐다. 한지를 활용해 만든 한지 바스켓은 물건을 두거나 꽃을 꽂는 등 공간에 멋을 더한다(사진 아래). [사진 빈컴퍼니]
지난달에는 런던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V&A)의 한지 워크숍에 초대됐다. 바티칸·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종이 전문가들이 김빈과 문경한지 김춘호 대표가 제안하는 한지의 미래에 귀기울였다. 박물관 보존지로 흔히 일본 종이가 많이 쓰이는데, 워크숍 이후 V&A는 한지를 주문했다. 그에게 좋은 디자인을 물었다. “올바른 디자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줘서 생각과 행동을 바르게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김빈=1982년 서울생. 본명은 김현빈. 홍익대 산업디자인과 졸업 후 LG전자를 거쳐 빈컴퍼니를 창업했다. 2006년과 2009년 지식경제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이 뽑는 차세대 디자인 리더로 두 차례 선정됐다. 2011년 파리 메종&오브제의 ‘디자인붐 TOP10 디자이너’에 꼽혔다. 그의 한지 바스켓은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수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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