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人文,社會

[남정욱 교수 명랑笑說] 나이 들며 멋도 함께 드는 여자들… 어릴 땐 몰랐던 '주름의 美學'

바람아님 2015. 5. 16. 09:02

(출처-조선일보 2015.05.16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신문사 논설위원 한 분이 재미있는 칼럼을 썼다. 종편 방송에 고정 출연을 하게 되었는데 신문쟁이가 카메라 앞에서 잘할 수 있을까, 괜히 나갔다가 논설위원 이미지만 흐리는 
거 아닌가 걱정이 태산이라신다.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다. 글 쓰는 게 본업인 기자들의 어색한 방송은 4대 종편에 차고 넘친다. 
당연한 일이다. 글이 말보다 편한 사람들을 데려다 놓고 혀로 시청자들을 휘어잡으라 
하니 될 턱이 없다(방송사와 신문사 기자는 괜히 따로 뽑는 게 아니다). 
발음이 잘 안 되는 건 기본이고(사자가 집을 먹는다고 해서 무슨 말인가 했다. 
'짚을'을 '지플'이 아닌 '지블'로 발음한 것이다) 한 문장 안에 주어가 두 개일 때도 있다.

그런데 칼럼을 읽다 보면 이분의 진짜 걱정은 그게 아니다. 
50대 여자의 주름과 뱃살은 어찌 가릴 것인가라는 매우 육감적인(!) 고민을 하고 계신다. 털어놓았더니 약점이 되었다고, 글을 읽은 뒤로 그분이 우려하는 부분만 눈에 더 
들어오니 살짝 죄송하다(나이 들고 안목이 생기다 보니 가려도 보인다).

문득 글의 행간에서 어리고 살이 처지지 않은 여자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경계를 읽는다. 팽팽하고 차진 것으로만 기준을 삼자면 주름은 죄악이고 뱃살은 게으름에 대한 징벌이다. 거기에는 남자들은 다 나이 어린 여자만 좋아할 것이라는 통설까지 한몫한다. 
과연 그럴까. 남자들이 대체로 멍청한 건 맞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결사적으로 바보인 
것은 아니다. 술 마시면서 몇 시간 시시덕거릴 때의 상대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때의 
상대 정도는 구분할 줄 안다는 얘기다.

	일러스트
'무등산 타잔'이라는 영화의 프로듀서를 맡았을 때다. 
현장에 이재은, 김규리(개명한 김규리가 아니라 '여고괴담' 1편에 나왔던 원래 김규리) 등 젊고 예쁜 여배우들이 현장에 넘쳤지만 쉰 넘은 스태프들에게는 소 눈에 닭이었다. 
오히려, '쟤는 어떻게 데뷔하고 연기가 하나도 안 느냐', '촬영 전날 술 마시는 무개념은 
여전하네'같이 틈틈이 '뒷담화'들을 나누시는데 현장에 특별출연자인 정소녀가 도착했다.

이게 웬일이래. 갑자기 촬영장에 화색이 돌았다. 머리 희끗희끗한 촬영, 조명 등 각종 
감독님이 정소녀에게 말 한마디 붙여 보려고 핑계를 찾고 있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 이분들에게는 저 아줌마가 로망이구나. 어르신들은 자신들이 젊었을 때 좋아했던 
여배우의 주름과 예전 같지 않은 몸매를 가장 아름답게 카메라에 담기 위해 번갈아 NG를 불러가며 그날 하루 촬영을 다 채웠다. 영화에서는 1분도 채 안 되는 분량이었다. 
소생 당시 서른 중반이었던 만큼 그분들이 자신들의 흘러간 청춘과 재회했다고 생각했다.

어느덧 그 나이에 근접하게 된 지금 그게 얼마나 멍청한 생각인지 알게 됐다. 
그날 현장에서의 정소녀는 그 자체로 분위기 있게 아름다웠던 것이다. 
당연히 그 아름다움은 성마른 청춘이 결코 알아볼 수 없는 다른 차원의 미학이다. 
흔히 남자는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멋이 든다고 한다. 
여자라고 그렇지 않을 까닭이 없다.  물론 나이'만' 먹은 여자는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