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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욕망의 브레이크

바람아님 2015. 5. 10. 09:55

[중앙일보] 입력 2015.05.09

 

“한동안 귤이 안 나온데. 다른 것 먹자.”

“왜?”

식구들이 귤을 좋아해서 늘 빼놓지 않고 사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귤이 나오지 않는 철이 있다는 걸 이상히 여긴다. 한국에서 제철과일이란 말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귤은 겨울에 먹고 요맘때엔 딸기농장에 가고, 여름엔 참외를 먹는 것이 제격이었는데 기술 발달 덕에 과일은 언제든 먹을 수 있게 됐다. 편의점은 24시간 불을 밝히고, 한 번 놓친 TV 프로그램도 언제든지 다시보기를 할 수 있다. 사회는 빠르고 편하게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숙은 지연된 욕구 충족을 견디는 것이라고 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원할 때 갖는 것보다 참고 기다리면 나중에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걸 깨닫는 것이 성숙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월터 미셀은 유치원의 4~5세 아이들에게 마시멜로를 주면서 당장 먹으면 한 개를, 15분을 기다리면 두 개를 주겠다고 했다. 각각의 선택을 한 아이들을 오랫동안 관찰했다. 기다렸다가 두 개를 먹은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관계 형성도 잘하고, 대입시험 성적도 좋고, 만족스러운 성인기로 진입했다. 이 연구를 한 미셀 박사는 자제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후천적 노력으로도 발전 가능하다고 했다.

사실 인간의 본성은 참을성 없고, 욕망을 빨리 충족하고 싶어 하며, 쉽고 편하기를 바란다. 만족을 위해 적당한 비용을 지불하는 데에 망설임이 없다. 덕분에 새로운 서비스들은 빠르고 쉽고 편하게 소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덕분에 PC로 게임을 하던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면서, 그나마 책상에 앉아는 있던 아이들이 그마저 안 하게 됐다고 개탄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런 큰 흐름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생긴 지 5년 만에 4000만 명이 다운로드한 배달앱이 그렇다. 전통적으로 배달은 전단지나 상가 안내지를 보고 전화로 주문해 시킨다. 배달앱은 그 중간 단계를 뺐다. 앱으로 검색해 바로 주문할 수 있다. 배달앱 회사는 소비자와 소상공인이 상생하는 윈윈이라고 한다. 하지만 속내를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1만5000원짜리 치킨을 팔면 발생하는 이익의 반 정도가 수수료로 나간단다. 그러다 보니 어떤 곳에서는 배달앱을 통한 주문의 경우 음식의 양을 적게 준다. 소상공인·소비자 모두에게 썩 좋은 일은 아니다. 대신 열매는 배달앱이 가져간다. 그저 전화를 걸고 “저, 여기 어딘데요. ○○ 갖다 주세요”라고 말하는 과정을 생략하는 편리를 추구한 결과다.

총알배송, 원격 진료, 우버나 택시앱 등 기술 혁신은 기다림과 불편을 죄악시하고 빠르고 편한 것을 추구한다. 그러나 기다릴 줄 아는 것, 불편을 견디는 것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따로 시간을 내 템플스테이를 가는 것보다 일상의 삶 속에서 체화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혁신은 빠르고 편안함만을 추구하고 재촉한다. 어느새 불편을 견디는 마음의 근육은 퇴화하고 있다. 조금만 느리고 불편하면 짜증이 솟구친다. 편리를 쫓는 욕망에 의도적 브레이크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