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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부의 총체적 무능이 메르스 비상사태 불렀다

바람아님 2015. 6. 3. 09:59

중앙일보 2015-6-3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확산 일로다. 2일 메르스 관련 사망자가 2명 발생했고, 3차 감염자도 최초로 나왔다. 확진 환자는 25명을 넘어 사우디아라비아(1010명 발생에 442명 사망)와 아랍에미리트(76명 발생에 10명 사망)에 이어 세계 3위의 불명예를 안게 됐다. 환자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격리 대상이 얼마나 확대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불안이 가중되면서 노약자의 병원 예약 취소가 폭주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부모도 줄을 잇고 있다. 일시 휴교하는 초등학교와 유치원도 속출하고 있다. 정부가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못해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바람에 생긴 방역 재앙이다.

 

 

 해외에서도 한국은 ‘무책임한 메르스 오염지역’이라는 오명을 얻고 있다. 홍콩은 한국인과 한국 방문자를 집중관리 대상에 포함했다. 일본도 한국인과 한국 방문자 중 발열 등 관련 증상 발현자를 대상으로 상담을 요구하고 있다. 주식시장에서 항공주를 포함한 여행 관련주가 폭락하고 있으며 해외에서도 한국 여행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 이제 메르스로 인한 국가 신인도 추락까지 염려해야 할 상황이다.

 

 정부는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러서야 메르스 확산 방지 긴급대책반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격리 병상을 충분히 확보하고 의료기관의 관련 비용 대책을 마련하며 입국 관리와 검역을 강화하기 위한 관련 인력을 대책본부에 파견키로 했다. 이미 사태 초기에 취했어야 할 조치들이 아닌가. 초동 대처의 골든타임을 놓친 뒤 뒤늦게 내놓은 대책이 참으로 궁색하다. 이러니 무능한 정부라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보건복지부는 감염병 위기 수준을 ‘주의’ 단계로 유지하면서 대책본부장을 차관에서 장관으로 격상하는 등의 대응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국민의 체감위기는 이미 국가비상사태에 준하는 ‘심각’ 수준인데 정부는 무슨 뒷북이냐는 인식이 팽배하다. 국민은 미숙한 방역 대책에 실망을 거듭해 정부에 대한 불신 풍토가 팽배하다.

 

 이제는 국가 보건의료 역량을 총동원해 더욱 집중적이고 치밀한 방역 관리로 사태의 추가 확산을 막을 때다. 정부는 전염병을 추적하고 확산방지 대책을 강구할 예방의학·역학·보건학 전문가를 총동원하는 비상조치라도 발동해 사태에 대처해야 한다. 필요하면 사스·신종플루를 막은 적이 있는 전문가도 불러야 한다. 지자체에 협조를 요청해 환자의 발생과 동태를 파악하는 역학자들의 활동을 행정력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데다 변이 가능성마저 큰 바이러스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 추가 확산을 조금이라도 더 효과적으로 저지하는 방법이다. 정부가 국민의 믿음을 조금이라도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환자가 발생한 병원의 명단을 공개하고 일시 폐쇄하는 한편 경영 손실을 공익 기여 차원에서 보상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애초 정부에서 가능성을 작게 봤던 3차 감염자가 이번에 발생하면서 메르스 대량 확산 가능성이 훨씬 커지게 된 점도 주목할 일이다. 정부는 3차 감염자 발생을 두고 “의료기관 내 감염으로, 지역사회 확산으로 보기 어렵다”며 애써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지역사회 확산을 포함한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확산을 막는 노력에 집중해야 할 때다. 감염 환자를 집중해 돌보는 특수격리병원을 지정하거나 격리 구역을 마련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등 최악의 상황까지 상정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일이 닥친 뒤에야 서두르지 말고 사전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메르스 대응에서 지역별 격차를 줄이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병원급이나 종합병원급 이하의 의료기관에서도 메르스를 검사할 수 있도록 장비와 시스템을 지원해야 한다. 이는 환자의 이동 범위를 최소화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

 

 정부는 방역의 기본 사항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한다. 의심자 또는 확진자를 발견했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긴급 매뉴얼을 점검하고, 현장에서 곧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항공기 승무원, 공항 응급구호대, 검역·세관·출입국관리 공무원들은 메르스 관련 증세가 보이는 여행객들을 발견하는 즉시 출국을 막고 질병통제센터로 보내는 검역 시스템을 당장 가동해야 한다. 예방을 위해 할 수 있는 손 씻기 등의 방법을 알리는 전 국민 대상 긴급 보건교육도 실시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