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 2015.05.30
우리은행이 작년 3월 하루 4~5시간씩 일하는 시간제 창구직원 170명을 모집하는 데 3000여명이 몰렸다. 길어야 2년 일할 수 있는 비정규직이고 연봉 1600만원 정도인데도 지원자가 줄을 섰다. 은행·기업들이 시간제 근로자를 적극 채용하면서 작년 3월 이후 1년 사이에 시간제 근로자가 17만5000명 늘어났다.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는 올해 처음으로 600만명을 넘어섰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늘어나면서 전반적인 고용의 질(質)도 하락하고 있다. 지난 3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 평균 월급은 146만7000원으로 정규직의 54%에 지나지 않는다. 2007년 이후 격차가 가장 벌어졌다. 정규직·비정규직의 근속 기간 차이는 4년10개월로 1년 사이에 4개월이 늘었다. 정부가 여러 차례 비정규직 차별 해소 방침을 밝혔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첫 일자리로 삼는 청년(靑年)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20대 비정규직은 103만명으로 작년보다 3.5% 늘었다. 퇴직 후 눈높이를 낮춰 새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가 많은 60대를 제외하곤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우리나라에선 비정규직으로 3년을 일한 뒤에도 정규직으로 바뀌지 않고 계속 비정규직에 머무르는 비율이 51%에 이른다. 작년 15~29세 청년 취업자 네 명 중 한 명은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첫 직장을 시작했다. 비정규직으로 인생을 출발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선 미래가 불확실해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3포 세대'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정부는 작년 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복지 격차를 줄이고,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기회를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비정규직 종합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노동계의 완강한 저항으로 노사정(勞使政) 대타협이 무산되면서 하나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旣得權) 지키기로 인해 노동시장 개혁이 좌초 위기에 빠지면서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과거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면서 정규직 보호에만 매달리고 비정규직 차별에 눈을 감았다가 경제의 활력을 잃어버렸다. 임금 수준이 정규직의 60%에 지나지 않는 비정규직 비중이 전체 일자리의 37%를 넘어서면서 소비가 위축되고 불황의 강도가 더 심해지는 부작용을 겪은 것이다. 우리도 이대로 가면 일본을 뒤따라갈 수밖에 없다. 노사정이 위기의식을 갖고 정규직·비정규직 격차가 고착(固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시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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