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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코리아] '어머님이 누구니' 그건 왜 묻는데?

바람아님 2015. 5. 28. 10:28

(출처-조선일보 2015.05.28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헛된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다. 
사회의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면죄부를 준다. 
개천에서 용이 나려면 누군가의 희생이 전제된다. 
잘나가는 재벌은 국가에서 특혜를 받으며 성장했다. 
그러나 성공한 개천 용이 개천을 죽이는 데 앞장섰듯, 
재벌 기업은 중소기업을 착취하거나 쥐어짜며 갑질을 한다. 
차라리 희생한 미꾸라지가 살 수 있는 개천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낸 책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개천표 용'을 둘러싼 담론 중 가장 도발적이고 투쟁적인 시선이다.

척박한 현실을 딛고 일어선 성공 신화인 '개천표 용(龍)'을 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개천표 용은 최악의 신랑감'이라는 경험담부터 
'개천을 콘크리트로 덮어 복개(覆蓋)해놨는데 어떻게 용이 나오느냐'는 사회환경 책임론, 
'그래도 개천표 용이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는 훈훈한 마무리형까지.

어떤 쪽이든 이제 '개천 출신 용'이 나오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에는 다 공감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얼마 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세대 간 계층 대물림 현상이 다시 강해져 'U자형 추이'를 보이고 있다. 
전국 20~69세 성인 남성 1500명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4세대 간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에는 연관성이 0.599, '아버지와 본인'은 0.449, 
'본인과 아들'은 0.600이었다. 
한마디로 부모와 상관없이 계층 상승하는 시절도 잠시 있었지만 우리 자식들 세대에는 
계급 역전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극단을 요즘 유행하는 박진영의 노래 '어머님이 누구니'에서 봤다. 
그 가사는 이렇다. 
"넌 허리가 몇이니? 24요. 힙은? 34요.… 
어머님이 누구니. 도대체 어떻게 너를 이렇게 키우셨니." 
엄밀히 따지면 가사가 틀렸다. 체제 저항적 외모를 가진 기자는 신체 발육과 외모는 
환경적 요인보다 DNA 탓이라고 생각한다. 
박진영의 노래 가사는 '도대체 어떻게 너를 이렇게 낳으셨니'라고 썼어야 했다.

'얼굴보다는 내면'이라는 말은 초등학생도 안 믿는 시대가 됐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유전 형질을 찬양하고 그걸 대중이 받아들이는 시대는 
무슨 의미일까. 
'지지자 불여호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호지자 불여락지자(好之者 不如樂之者·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공자(孔子)님 말씀이다. 이걸 요즘 세태로 풀면 
'낙지자 불여상속자(樂之者 不如相續者·즐기는 사람도 상속자만은 못하다)'쯤 
되지 않을까?

질투조차 포기한 시대가 슬프다. 
용은커녕 이무기도 어불성설이다. '개천표 용'이라는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됐다. 
개천에서 가장 성공하는 것이 용이란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한다. 
개천에는 꺽지도 자라고, 메기도 있으며, 실버들도 자란다. 
개천에서 뜬금없이 곰이나 호랑이도 나올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고 그게 현실적 성취가 되는 나라. 
이게 아마 이 정부가 주창하는 '창조경제'의 철학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그룹이 '창조경제를 응원한다'는 광고를 허구한 날 내보내는 것 말고 
'창조경제'가 이룬 성과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