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06.19
김영희/국제문제 대기자
그러나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위안부 문제에 관한 여덟 차례의 한국 외교부와 일본 외무성 국장급 회담이 열리고, 한국 외교부 장관이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서울과 도쿄에서 열리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에 두 나라의 각료급 인사가 참석하고, 박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메시지가 각각 상대국 행사에서 대독되는 등 동시다발로 진행되는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 박 대통령의 말도, 위에 언급한 고위 소식통의 말도 근거가 있어 보여 고무적이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지난해부터 한·일 관계를 조속히 개선하라고 일본에는 강한, 한국에는 은근한 압력을 넣어왔다. 특히 지난 4월 아베 방미 때 미국은 그를 극진하게 환대하면서 과거사 정리를 압박했다. 그래서 아베는 그때까지 고집하던 “고노 담화 수정은 않겠다”에서 한발 더 나가 “고노·무라야마 담화를 전체적으로 계승하겠다”는 적극적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의 말 대로 “두 사람이 있어야 탱고를 춘다.” 아베가 미국과 국제사회의 압력 앞에 살짝 꼬리를 내리기에 앞서 한국에서는 박 대통령이 한·일 관계 개선의 강한 의지를 보였다. 원로 지일파인 유흥수 전 의원을 주일 대사에 임명한 것도 박 대통령의 그런 의지의 확실한 표명이었다.
한·일 간 대표적인 3대 이슈는 위안부, 독도, 과거사다. 독도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고 과거사는 장기 과제다. 그래서 남는 것이 핵심 중의 핵심 쟁점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인정, 사과, 배상”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우리가 만족할 수준으로 다가오기에는 그의 민족주의적 역사수정주의가 너무 나가버렸다. 그래서 박 대통령의 희망적인 언급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인 타결을 위한 마지막 한 걸음을 떼기까지는 높진 않지만 협상자들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디테일한 이슈가 몇 가지 남았다.
그중 하나가 메이지 시대 근대산업시설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문제다. 23개 등재 대상 중 7개 시설은 징용에 끌려간 조선인들이 노예노동을 한 곳이다. 등재는 하되 조선인이 당한 가혹하고 인간 이하의 대접의 살상을 반영하라는 것이 한국의 요구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 아우슈비츠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올랐지만 거기에는 유대인이 당한 참상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일본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운 위안부 소녀상 철거도 요구한다. 그건 위안부 문제가 타결되면 한국 정부가 생존 중인 전 위안부들과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과 여론을 설득해 양보해야 할 부분이다. 이런 까다로운 문제가 걸려 있어 외교 라인의 다른 고위 소식통은 박 대통령의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발언을 “협상의 막바지에 접근하고 있을 뿐”이라고 고쳐 말했다. 그는 아베 총리의 책사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전보장국장이 방한한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도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야치 국장이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과는 주일대사 시절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라는 말로 한·일 간에 “막후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박 대통령의 말을 뒷받침했다. 그래서 한·일 간 핵심 쟁점의 마지막 협상은 이병기-야치 라인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억측이 나온다.
지금 절실한 것은 한국과 일본의 정상들이 마지막 한 걸음을 과감하게 떼는 정치적 결단이다. 외교에는 어느 한편의 완승은 없다. 지금의 단계에서 우리는 아베 총리가 어느 선까지 다가오면 핵심 현안이 해결된 것으로 간주할 것인가를 정의해두고 있어야 한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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