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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일 수교 50주년 … 양국 정상, 통큰 결단 보여줘야

바람아님 2015. 6. 21. 10:02

[중앙선데이] 입력 2015.06.21

 

22일은 일본 도쿄에서 한·일 기본관계조약이 조인된 지 꼭 50년이 되는 날이다. 국교가 정상화되고, 동반자로서의 협력관계 기틀을 마련한 뜻깊은 날이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 양국 관계는 최대의 고비를 맞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 교과서, 독도 영유권 문제 등에 부닥쳐 꽉 막힌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집권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 정식으로 정상회담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일 수교 50주년인 22일에도 양국 정상이 함께하는 기념행사는 없다.

 양국 관계가 이 지경에 이른 데엔 다분히 지도자들의 리더십 문제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상대방 국가에 대한 자극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강경한 태도가 갈등과 반목을 키워왔다. 국내 정치와 지지층을 의식한 나머지 민족주의적 포퓰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론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유럽의 대표적 앙숙관계인 프랑스와 독일 지도자들이 제2차 세계대전 후 공동 번영을 위해 대승적 화해를 한 사례와는 전혀 딴판이다.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과 콘라트 아데나워 독일 총리는 자국민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여론을 화해 쪽으로 이끌었다. 여론에 끌려가지 않았다. 대의를 내걸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자고 국민을 설득했다. 그 결과 역사적인 화해를 이룬 것은 물론 유럽연합(EU)을 이끄는 쌍두마차가 됐다. 지금도 한쪽에서 새 지도자가 선출되면 곧바로 상대방 국가를 찾아 인사하고 축하받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한·일 관계 개선은 무엇보다 우리의 국익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경제와 안보를 비롯, 여러 분야에서 일본과의 협력 확대는 우리에게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일본으로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국익을 위한 지도자들의 결단과 리더십이 중요하다. 과거사 문제와 경제·안보 현안을 별도로 다루자는 이른바 ‘투 트랙 접근법’도 좋지만,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한·일 정상회담을 여는 것이 관계 정상화의 지름길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양국 관계에 해빙 조짐이 보인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21일 도쿄를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과 회담한 뒤 수교 50주년인 22일 아베 총리를 예방한다.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최대 현안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돌파구가 마련되면 좋겠지만, 일본에서 4년 만에 열리는 이 회담 자체만으로도 양국 관계 진전에 큰 동력이 생길 것으로 기대된다.

 박 대통령도 얼마 전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과의 협의에서 큰 진전이 있었고 논의가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협상 진전 여부를 두고 양국 사이에 여전히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그만큼 박 대통령의 타결 의지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가시밭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올 8월 아베 담화에 담길 내용을 두고서도 신경전이 벌어질 수 있다.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인정, 그에 대한 반성과 사죄가 충분히 담기지 않을 경우 또다시 감정 대립이 격해질 수 있다.

 하지만 외교에선 어느 한쪽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상대방의 양보만 강요해서도 안 된다. 주고받는 게 협상이다. 수교 50주년을 맞이해 공영의 길을 걷도록 양국 지도자에게 다시 한 번 결단을 촉구한다. 지도자가 마음만 먹으면 자잘한 실무적 걸림돌들은 쉽게 치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