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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유네스코 유산에 오른 百濟

바람아님 2015. 7. 6. 11:18

(출처-조선일보 2015.07.06 김태익 논설위원)

일본 고대 보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나라(奈良)의 정창원(正倉院)에는 백제 의자왕이 일본 실권자 후지와라에게 보낸 
바둑판과 바둑함이 남아 있다. 바둑판 모서리에는 등을 둘 가진 낙타가 그려져 있고 은으로 만든 바둑함에는 코끼리가 
새겨져 있다. 쌍봉낙타는 몽골쯤 가야나 볼 수 있고 코끼리는 인도·동남아가 고향이다. 
백제에서 만들어 보낸 물건에 어떻게 이런 동물 모양이 들어갔을까.

▶그러고 보니 1993년 충남 부여에서 발굴된 백제금동대향로에는 악어도 조각돼 있다. 악어는 물속에 들어가 있는 듯 
주둥이에 기포(氣泡)가 달려 있다. 악어를 실제 보지 않고는 이런 생생함을 담기 힘들 것 같다. 
백제사 전공인 이도학 전통문화학교 교수는 이를 "백제가 얼마나 국제적이었나 보여주는 물증"이라고 단언한다. 
백제인들은 발달한 항해술과 조선(造船) 기술을 바탕으로 일본·중국은 물론 동남아까지 누볐다. 
중국 광서 장족자치구에는 지금도 백제허(百濟墟)라는 지명이 있다. 백제소학교, 백제여행사도 있다.


	[만물상] 유네스코 유산에 오른 百濟
▶우리말 '시시하다'를 일본에선 '구다라나이'라고 한다. '구다라'는 백제를 말한다. 
그러니까 백제 것이 아니면 시시하다는 뜻이다. 
불교와 천자문 등 선진 문물이 대부분 백제에서 건너갔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백제의 세 번째 수도 사비성, 지금의 부여는 중국·일본·동남아 사람이 오가고 각지의 온갖 특산물이 모이는 국제도시였다. 
지금 부여읍 인구가 2만여명인데 당시엔 5만~6만명이나 됐다. 
성 안팎에 정림사 천왕사 같은 절들이 헤아리기 힘들게 많았다.

▶백제가 웅진(공주)에서 사비로 천도한 것은 538년 성왕(聖王) 때였다. 
오랜 계획과 첨단 공법 덕에 사비의 시가지는 정연한 바둑판 같았다. 
현재 부여군청 앞 로터리에서 부여박물관에 이르는 길은 백제 때 만들어진 길이 발전한 것이라고 한다. 
길 양편에서 그때의 배수로 흔적이 발견됐다.

▶그러나 최인호의 소설 제목 '잃어버린 왕국'처럼 백제는 오랫동안 역사의 뒷전에 있는 느낌이었다.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고구려, 삼국통일 위업을 이룬 신라에 비해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제 유네스코가 공주·부여·익산에 있는 백제역사유적 8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들 유적이 인류 가치 교류의 중요한 증거이고 문화의 우수함과 독창성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이번 지정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선 백제사를 보는 시야를 백제 사람들이 세계를 봤던 것만큼 넓혀야 할 것이다. 
단재 신채호의 말을 빌어 백제를 상상하고 싶다. 
"조선의 역대 왕조 가운데 바다 건너 영토를 둔 왕조는 백제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