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5-7-9
아이고야! 밥그릇을 보자마자 한숨도 감탄도 아닌 소리가 절로 나온다. 사발 가득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이 고봉으로 담겨 있다. 엉겁결에 한술 크게 떠 호박잎에 떠억 얹고, 불에서 내려온 뒤에도 자글자글 끓어대는 강된장을 그 위에 담뿍 담아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달다! 바짝 말라 있던 입안이 밥알의 온기와 향으로 촉촉하게 젖어 온다. 쌈을 싸는 손이 바빠지고 오물오물 음식을 씹어대는 내 입도 바빠진다. 어머니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느라 쉴 틈이 없으시다. 시장 어귀 좌판을 벌여 놓으신 할머니가 파는 고추는 맵싸하니 조림을 할 때 좋겠고, 오이는 그 다음다음 집에서 파는 것이 사각사각하니 오이소박이 담아 동생네도 좀 보내주어야겠고…. 맛난 음식으로 배속이 두둑해지고 어머니 이야기에 바짝 곤두서 있던 신경이 느슨해진다. 어머니도 입맛이 돈다며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셨다. 몸살 기운 있으시다더니 밥상 앞에 앉아 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다 나으셨나. 설핏 웃음이 나온다.
이게 얼마 만인가? 헤아리다 보니 허허 참! 기가 막힐 노릇이긴 하다. 식구라고 해봤자 어머니, 나, 아들 이렇게 달랑 셋뿐인데 한 상에서 밥 먹어 본 지가 꽤 오래전 일이다.
한집에서 살며 끼니를 같이하는 것이 식구라는데 이러고 살다 보면 내 식구 다 잃겠구나. 정신이 퍼뜩 든다.
안 되겠다. 당장 그림 그린다며 작업실에서 밤을 지새우는 아들 녀석 불러들여 내 어머니처럼 잔소리라도 해서 밥상머리 앉혀 놓는 시간을 늘려야겠다. 뜨신 밥에 도란도란 이야기 반찬 삼아 한 끼 같이 하며 '우리 한 식구 맞지?' 확인도 하고, 함께 마주 앉아 밥 먹는 것부터가 식구의 시작이라고, 이담에 네 식구들 생기면 밥상 앞에 둘러앉아 '이게 식구다' 일러 주라 말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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