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로맨틱한 시(詩)'가 아니라 '로맨틱 한시(漢詩)'다. 한시라고 해서 엄숙하고 심오하기만 할까. 옛 사람도 나고, 자라고, 사랑하고, 늙고 병들었다. '로맨틱 한시'로되 '로맨틱한 시'다. 사랑 노래가 절절하다.
'지나가는 봄을 슬퍼하기 때문이 아니에요(不是傷春病·불시상춘병)/ 오로지 그대를 그리워하기 때문에 생긴 병이에요(只因憶玉郞·지인억옥랑)/ 티끌 같은 세상 괴로움만 쌓이니(塵世多苦累·진세다고루)/ 떠나가 돌아오지 않는 그대 마음 때문이죠(孤鶴未歸情·고학미귀정)'.
조선 선조 때 전북 부안 기생 매창(1573~1610)은 정 주고 떠난 무정한 남자를 그리며 노래한다.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이 되는 경험은 사랑에 빠져본 이라면 알리라. 저자는 덧붙인다. "'위에 염증이 있어요' 의사가 말했다. 의사가 염증이라고 발음하는 순간 알게 되었다.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리움은 머리만의 일이 아니라 또한 몸의 일이기도 하다는 것. 그게 아니라면 염증이 생길 이유가 없으니까."
매창이 그토록 그리워한 상대는 누구였을까. 매창과 사랑을 나누었던 천인 출신 가객 유희경(1545~1636)은 아니었을까. 떠난 그도 매창을 그리며 이렇게 읊었다. '그대 집은 바닷가 부안 땅(娘家在浪州·낭가재랑주)/ 내 집은 멀리 서울에 있네(我家住京口·아가주경구)/ 그리워하면서도 보진 못하니(相思不相見·상사불상견)/ 오동잎 비가 되어 내릴 때는 애간장이 타네(腸斷梧桐雨·장단오동우)'.
사랑하는 이와 언제나 눈길을 마주하면 좋으련만 왜 사랑은 자주 서로 어긋나는 걸까. 이수광(1563~1628)은 치렁치렁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로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묶을 수 있기를 바라며 쓴다. '버드나무 새 실이 생겨나(楊柳有新絲·양류유신사)/ 줄줄이 수도 없이 늘어졌지만(絲絲千萬縷·사사천만루)/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머무르게 한 일이 있었는가(何曾絆人住·하증반인주)'. 저자는 '바람 피운다는 말. 누가 만들었을까? 그것만큼 적확한 표현이 있을까? 새 실이 수도 없이 늘어져도 마음을 묶을 수는 없다. 마음은 바람 같다'고 감상을 적는다.
첫사랑, 사랑의 기쁨, 변심, 이별, 사랑의 슬픔 등으로 장(章)을 나눠 사랑을 노래한 70여편 한시를 실었다. 저자는 잡지 등에 연애 칼럼을 쓰는 젊은 시인이다. 그는 한시 해설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마치 SNS에 서툰 사랑 이야기를 올리는 젊은이들처럼 한시를 읽고 떠오르는 자신의 경험을 덧붙였다. "'주말에 윤중로에 가자. 벚꽃 보러.' 애인이 말했을 때 나는 대답했다. '벚꽃은 우리 동네 놀이터에도 피었어. 윤중로엔 꽃보다 사람이 더 많아.' 둘이 윤중로에 갔는지, 안 갔는지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내가 한 저 거지 같은 말은 기억난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응 가자, 꽃이랑 꽃 보러 가자.' 꽃보다 예쁜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다면…."
정색하고 한시를 배우며 읽으려는 이에겐 유치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미 사랑이 멀어진 사람에게도 그 유치한 간지러움이 그 시절 찬란했던 때를 추억하게 할 듯하다. "언제였지?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진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게. 행복을 그렇게 구체적으로 느낀 적이 또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