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사설] 비참하게 죽는 한국인 … 웰다잉 법안 미루지 말아야

바람아님 2015. 7. 12. 09:19

[중앙일보] 입력 2015.07.11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꼽힌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국가별 죽음의 질 지수’ 조사에선 10점 만점에 3.7점으로 40개국 중 32위였다. 한국인의 죽음은 ‘과도한 연명치료로 기계에 의존한 채 병원 침상에서 유언도 못하고 비참하게 숨을 거둔 후, 화려한 장례식장으로 간다’고 묘사될 정도다. 죽음의 질을 높이는 ‘웰다잉(Well-dying)’의 사회적 공감대는 커지고 있지만 법과 시스템은 없다.

 그래서 이번에 김재원(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웰다잉 법’은 관심을 모은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연명의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도 노인 10명 중 9명은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럼에도 한국의 연명의료 집착은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더욱 강해졌다. 당시 이 병원에서 보호자 요청으로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뗐던 의사가 살인방조죄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병원들이 방어적으로 연명치료에 매달린 측면이 있다.

 이 사건 후 ‘웰다잉’ 논란이 확산되며 연명치료를 환자와 보호자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18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세 번이나 발의됐지만 폐기되는 등 후순위로 밀리기 일쑤였다. 이젠 더 이상 늦춰선 안 된다. 이번 법안은 진전된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미국·영국·프랑스·대만 등 많은 나라가 환자 자기결정법을 만들었듯이 세계적 대세다.

 ‘웰다잉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선 ‘연명의료 선택’이 아니라도 갈 길이 멀다. 웰다잉의 목표는 임종 과정이 치료가 아닌 보살핌이며, 죽음을 천재지변처럼 당하는 게 아니라 준비하고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죽음을 맞이할 호스피스 완화병상도 크게 부족하다. 국내 완화병상 수는 880개. 최소 필요 병상 수 2500개(인구 100만 명당 50개)의 3분의 1 수준이다. 정부는 2년 전 2020년까지 1400개를 확보하겠다고 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다. 연명의료 논란은 이즈음에서 마무리하고 또 다른 차원의 웰다잉 문화를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