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2015-7-13
● "고풍스럽긴 한데 저긴 뭐하는 곳이지?"…90년 된 근대건축유적 '옛 서울역'
현재 KTX와 공항철도 그리고 각종 일반 열차의 기차역으로 쓰이는 서울역사 옆에는 아주 고풍스런 외관의 옛 서울역사가 있습니다. 2004년 1월 유리로 위풍당당하게 새로 지어진 서울역사가 한국의 중앙역(驛)으로 기능을 시작하면서, 바로 옆의 이곳은 빠른 속도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습니다.
옛 역사 앞에는 늘 일정 숫자의 노숙인들이 터를 잡고 있고, 주로 기차나 공항 철도를 타기 위해 서울역에 오는 이들은 다들 시간에 쫓기는 터라, 건축된 지 100년에 가까운 이 고색창연한 근대건축물은, 결코 들어가볼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나치는 건물이 돼버린 겁니다.
과연 이곳은 어떤 용도로 쓰일 수 있게 복원됐을까요?
사실 이곳을 근대건축 복원에 있어 상당히 바람직한 사례라고 평가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의 중앙역으로서 한국인들에게 중요한 기억을 간직한 공공건축물을 함부로 고치지 않고, 그것의 새로운 쓰임을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복원작업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새로운 서울역사 건설이 확정되면서 이곳은 그냥 버려질 뻔 했고, 실제로 상당기간 방치되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철도박물관으로 잠시 쓰이기도 했다가 이후에는 예술영화관으로 바뀔 뻔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문화체육관광부가 이곳에 주목합니다. 중요한 근대유산인 이곳을 깊은 고민 없이 예술영화관으로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는 판단을 한 겁니다. 그리고 문화부가 독단적으로 결정을 하는 대신 집단지성의 힘을 빌립니다. 바로 근대건축역사학자와 건축가 등 전문가들에게 활용방안과 복원 등에 관한 연구자문을 맡긴 겁니다.
그 결과, 미디어 아트 중심의 현대 미술과 예술 공연 중심의 문화공간으로 옛 서울역사의 새로운 정체성이 최종 결정됩니다. 그러면 왜 하필 미디어 아트 중심의 현대미술과 소규모 예술 공연 중심의 문화공간일까요? 애초엔 기차역을 리모델링한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을 모델로 해서 이곳을 미술관 또는 박물관으로 만들자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의견은 전문가들의 진지한 성찰 끝에 제외됩니다.
이미 기차역으로 역할을 하지 않은 지 오래된 폐역이었던 오르세 미술관 건물과 달리 이곳은 바로 옆에 기차가 쉴새 없이 운행하는 곳이여서 기차의 진동 탓에 전시작품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고정된 미술품이나 유적들을 전시하면 그 공간에 벽을 세우거나 가려서 전시에 맞게 변형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원래 실내 공간의 건축적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원래 지어질 당시의 건축미를 충분히 느낄수 있게 공간은 비어있으면서, 전시와 공연에 따라 빈 공간이
채워지는 형태의 예술을 담는 용도로 쓰도록 의견이 모아집니다. 이에 따라 설치와 해체가 용이한 미디어 아트와 소규모 예술 공연이 옛 서울역사에 담을 가장 적합한 예술 장르라는 결론이 내려졌고, 다양한 장르의 문화가 만나서 열차들처럼 교차된다는 의미에서 문화역 서울, 그리고 건물의 사적 번호가 284라는 점에 착안해 <문화역 서울284>라는 새로운 이름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내외부는 어떤 기준으로 복원됐을까요?
옛 서울역사 복원을 주도한 근대건축전문가인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옛 서울역사'가 한국인들의 삶에 미친 '기억의 가치'에 집중했다"고 말합니다.
2004년 초 새로운 서울역사가 문을 열기 전까지 옛 서울역은 무려 80년 동안 한국인의 기억속에 늘 한국을 대표하는 중앙역으로서, '역'(驛)을 생각할때는 최초로 떠올리는 대명사와 같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방에서 상경할때 서울의 첫 인상으로 기억되는 곳 역시 이곳이었습니다.
지방에서 오랜 시간 기차를 타고 와 수도 서울에 드디어 발을 디뎠을때 접하는 어떤 이에겐 '서울 그 자체'이기도 했을 겁니다. 내부 복원은 이렇게 수많은 한국인들의 기억속에 서울의 첫 관문으로 자리한 서울역이,
국가의 중심역으로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떨쳤던 70-80년대의 서울역 풍경을 살리는 쪽으로 진행됐습니다.
반면 외부는 1925년 건축 당시 모습을 충실히 복원했습니다.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옛 서울역사는 일본인 건축가가 스위스의 루체른역을 모델로 거의 그대로 지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지만, 옛 서울역은 조선총독부가 아닌 일본의 식민지를 수탈하기 위해 만든 기업인 만주철도회사가 지었습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러시아가 가지고 있던 만주지배권을 넘겨 받으면서 일본의 대륙 침략의 선봉에 섰던 회사가 바로 만주철도회사입니다.
만철은 한반도를 대륙 수탈의 발판으로 삼고 싶었고, 그런 야욕을 드러내기 위해 구 대륙의 핵심 역인 스위스 루체른역을 모델로 서울역을 만든 겁니다. 서울역 외관을 1925년 당시 모습 그대로 살린 이유는 일본의 대륙 침략의 야욕 의지가 고스란히 담긴 건축물을 통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사실과 교훈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요즘 이곳에선 흥미로운 현대미술 전시와 재기발랄한 예술가들의 공연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과 전국 전역에서 가장 교통이 편리한 교통의 요지에서 멋진 전시와 공연을 보는 것도 좋은데 가장 좋은 점은 모든 전시와 공연이 무료라는 사실입니다.
근대 건축 역사상 가장 잘 복원됐다는 평가를 얻는 90년 된 근대건축물을 자유롭게 탐방하면서 2015년 현재 가장 핫하고 논쟁적인 작품과 공연까지 볼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옛 서울역'은 한번쯤 꼭 찾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벌써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엄습한 지금, 이곳은 일단 들어가기만해도 서늘한 실내 공기 덕분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현재 KTX와 공항철도 그리고 각종 일반 열차의 기차역으로 쓰이는 서울역사 옆에는 아주 고풍스런 외관의 옛 서울역사가 있습니다. 2004년 1월 유리로 위풍당당하게 새로 지어진 서울역사가 한국의 중앙역(驛)으로 기능을 시작하면서, 바로 옆의 이곳은 빠른 속도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습니다.
옛 역사 앞에는 늘 일정 숫자의 노숙인들이 터를 잡고 있고, 주로 기차나 공항 철도를 타기 위해 서울역에 오는 이들은 다들 시간에 쫓기는 터라, 건축된 지 100년에 가까운 이 고색창연한 근대건축물은, 결코 들어가볼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나치는 건물이 돼버린 겁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스쳐 지나치는 동안 이곳은 긴 세월 한국의 중앙역으로 기능하면서 낡고 남루해졌던 내외부를 말끔히 복원하는 재탄생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2011년 긴 복원공사를 마치고 일반에 개방됐지만 아직도 이 공간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출입이 허용되는지조차 모르는 분들도 많습니다.
● '공간의 쓰임'을 진지하게 고민한 근대건축의 기념비적 복원
과연 이곳은 어떤 용도로 쓰일 수 있게 복원됐을까요?
사실 이곳을 근대건축 복원에 있어 상당히 바람직한 사례라고 평가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의 중앙역으로서 한국인들에게 중요한 기억을 간직한 공공건축물을 함부로 고치지 않고, 그것의 새로운 쓰임을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복원작업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새로운 서울역사 건설이 확정되면서 이곳은 그냥 버려질 뻔 했고, 실제로 상당기간 방치되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철도박물관으로 잠시 쓰이기도 했다가 이후에는 예술영화관으로 바뀔 뻔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문화체육관광부가 이곳에 주목합니다. 중요한 근대유산인 이곳을 깊은 고민 없이 예술영화관으로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는 판단을 한 겁니다. 그리고 문화부가 독단적으로 결정을 하는 대신 집단지성의 힘을 빌립니다. 바로 근대건축역사학자와 건축가 등 전문가들에게 활용방안과 복원 등에 관한 연구자문을 맡긴 겁니다.
● '옛 서울역'의 새로운 정체성은?
그 결과, 미디어 아트 중심의 현대 미술과 예술 공연 중심의 문화공간으로 옛 서울역사의 새로운 정체성이 최종 결정됩니다. 그러면 왜 하필 미디어 아트 중심의 현대미술과 소규모 예술 공연 중심의 문화공간일까요? 애초엔 기차역을 리모델링한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을 모델로 해서 이곳을 미술관 또는 박물관으로 만들자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의견은 전문가들의 진지한 성찰 끝에 제외됩니다.
이미 기차역으로 역할을 하지 않은 지 오래된 폐역이었던 오르세 미술관 건물과 달리 이곳은 바로 옆에 기차가 쉴새 없이 운행하는 곳이여서 기차의 진동 탓에 전시작품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고정된 미술품이나 유적들을 전시하면 그 공간에 벽을 세우거나 가려서 전시에 맞게 변형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원래 실내 공간의 건축적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원래 지어질 당시의 건축미를 충분히 느낄수 있게 공간은 비어있으면서, 전시와 공연에 따라 빈 공간이
채워지는 형태의 예술을 담는 용도로 쓰도록 의견이 모아집니다. 이에 따라 설치와 해체가 용이한 미디어 아트와 소규모 예술 공연이 옛 서울역사에 담을 가장 적합한 예술 장르라는 결론이 내려졌고, 다양한 장르의 문화가 만나서 열차들처럼 교차된다는 의미에서 문화역 서울, 그리고 건물의 사적 번호가 284라는 점에 착안해 <문화역 서울284>라는 새로운 이름이 생겼습니다.
● 외관은 1925년 그대로…내부는?
그렇다면 과연 내외부는 어떤 기준으로 복원됐을까요?
옛 서울역사 복원을 주도한 근대건축전문가인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옛 서울역사'가 한국인들의 삶에 미친 '기억의 가치'에 집중했다"고 말합니다.
2004년 초 새로운 서울역사가 문을 열기 전까지 옛 서울역은 무려 80년 동안 한국인의 기억속에 늘 한국을 대표하는 중앙역으로서, '역'(驛)을 생각할때는 최초로 떠올리는 대명사와 같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방에서 상경할때 서울의 첫 인상으로 기억되는 곳 역시 이곳이었습니다.
지방에서 오랜 시간 기차를 타고 와 수도 서울에 드디어 발을 디뎠을때 접하는 어떤 이에겐 '서울 그 자체'이기도 했을 겁니다. 내부 복원은 이렇게 수많은 한국인들의 기억속에 서울의 첫 관문으로 자리한 서울역이,
국가의 중심역으로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떨쳤던 70-80년대의 서울역 풍경을 살리는 쪽으로 진행됐습니다.
반면 외부는 1925년 건축 당시 모습을 충실히 복원했습니다.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옛 서울역사는 일본인 건축가가 스위스의 루체른역을 모델로 거의 그대로 지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지만, 옛 서울역은 조선총독부가 아닌 일본의 식민지를 수탈하기 위해 만든 기업인 만주철도회사가 지었습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러시아가 가지고 있던 만주지배권을 넘겨 받으면서 일본의 대륙 침략의 선봉에 섰던 회사가 바로 만주철도회사입니다.
만철은 한반도를 대륙 수탈의 발판으로 삼고 싶었고, 그런 야욕을 드러내기 위해 구 대륙의 핵심 역인 스위스 루체른역을 모델로 서울역을 만든 겁니다. 서울역 외관을 1925년 당시 모습 그대로 살린 이유는 일본의 대륙 침략의 야욕 의지가 고스란히 담긴 건축물을 통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사실과 교훈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 지금 '옛 서울역'에선 무슨 일이?
요즘 이곳에선 흥미로운 현대미술 전시와 재기발랄한 예술가들의 공연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과 전국 전역에서 가장 교통이 편리한 교통의 요지에서 멋진 전시와 공연을 보는 것도 좋은데 가장 좋은 점은 모든 전시와 공연이 무료라는 사실입니다.
근대 건축 역사상 가장 잘 복원됐다는 평가를 얻는 90년 된 근대건축물을 자유롭게 탐방하면서 2015년 현재 가장 핫하고 논쟁적인 작품과 공연까지 볼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옛 서울역'은 한번쯤 꼭 찾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벌써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엄습한 지금, 이곳은 일단 들어가기만해도 서늘한 실내 공기 덕분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최효안 기자hyoan@sbs.co.kr
'文學,藝術 > 디자인·건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88] 논란이 만든 랜드마크 (0) | 2015.07.25 |
---|---|
김수근의 건축혼, 몬트리올서 50년 만에 부활한다 (0) | 2015.07.18 |
다양한 삶의 가능성 제시하는 설계, 그게 건축가 임무 (0) | 2015.07.08 |
그의 잡지엔 '표정 있는 건축'이 있다 (0) | 2015.06.29 |
문갑식 기자의 기인이사(奇人異士)(1) 평생모은 100억원 들여 한옥호텔 짓는 안영환씨 (0) | 2015.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