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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경의 잊혀진 유라시아 이야기-3] 뜨거운 태양 아래 낙타 젖통가죽을 삭발한 포로 머리에 씌우면…세상에서 가장

바람아님 2015. 7. 20. 17:40

(출처-조선일보 2015.04.28 오은경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오은경의 잊혀진 유라시아 이야기-3] 

뜨거운 태양 아래 낙타 젖통가죽을 삭발한 포로 머리에 씌우면…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고문


신화와 전설 속에는 인간이 잊어서는 안 되는 압축된 상징이 담겨 있다. 
중앙아시아에는 포로들의 기억을 말살시켰던 무시무시한 주안주안 족의 고문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왜 굳이 기억을 말살시키려 했던 걸까?

그들은 포로를 잡으면 완전히 삭발시키고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낙타의 젖통 가죽을 포로의 머리에 뒤집어씌우고, 
목에는 칼, 손발에는 족쇄를 채워 뜨거운 사막에다 머리를 처박게 한 후 음식도 주지 않고 며칠이고 그대로 팽개쳐 두었다.

그러면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 아래 낙타의 젖통가죽이 말라 비틀어져 가며 삭발한 포로의 머리를 쇠고랑처럼 짓눌러 댄다. 
둘째 날부터는 새로 솟아나기 시작한 빳빳한 머리카락이 낙타의 가죽을 뚫지 못하고 오히려 포로의 머릿속을 뚫고 들어가 
버린다. 이때 고통이란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계속되는 고통 속에 대부분의 포로는 죽어버리고 만다. 
그중에서 간혹 생존자가 생긴다면 그를 풀어주고 음식과 물을 주어 건강을 되찾게 해준다.

그러나 극심한 고문을 겪은 생존자는 이미 과거의 기억을 완전히 상실한 후이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노예가 된 포로를 
만쿠르트라고 불렀다. 만쿠르트는 통상적인 열 명의 노예보다 더 값진 대우를 받았다. 
만쿠르트는 자기의 출신하며, 자기의 이름과 어린 시절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어머니와 아버지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쿠르트에게 자의식 따위는 없었다. 
밥을 주는 주인에게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최상의 노예일 뿐이었다.
포로들에게 낙타의 젖통을 이용한 고문 장면.
포로들에게 낙타의 젖통을 이용한 고문 장면.
노예를 소유한 주인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노예 반란이란 점을 고려해 본다면, 만쿠르트 만큼은 그럴 염려가 없었다. 
만쿠르트는 개처럼 밥을 주는 주인만 알아볼 뿐이었다. 또한 만쿠르트는 모진 고통을 견디고 살아났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고 힘이 셌기 때문에 아무리 더럽고 힘든 일이라도 불평 없이 해치우는 훌륭한 노예였다.

하지만 그는 이미 죽은 영혼과 다름없었기 때문에 주안주안 족에게 붙잡혀 가서 만쿠르트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족들조차 그를 구해보겠다는 결심을 포기해버렸다. 그럼에도 붙잡혀간 아들을 찾아 나선 나이만 족의 어머니가 있었다.

이 어머니에게는 잘생기고 늠름한 아들 졸라만이 있었다. 졸라만은 불행하게도 주안주안 족과 전투를 하다가 포로로 잡혀갔다. 
어머니는 아들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하얀 낙타 한 마리에 몸을 의지한 채 위험을 무릅쓰고 주안주안 족의 목초지로 잠입했다. 
그녀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들을 찾겠다는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수소문 끝에 아들을 찾아냈고 몰래 그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가축 지기가 되어 있는 아들은 겉모습만 과거와 똑같을 
뿐 이미 만쿠르트가 된 지 오래였다. 그녀는 무표정한 아들의 어깨를 부여잡고 슬픔에 복받쳐 흐느껴 울어봤지만, 
아들은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낙타 무리를 돌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어머니가 아들의 기억을 되살려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주안주안 족의 삼엄한 경비를 피해 달아나기도 했던 어머니는 도저히 자기 핏줄인 아들을 노예로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낯익은 환경으로 데려가면 언젠가 제정신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의 희망을 기대하며 어머니는 주안주안 족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아들이 있는 곳으로 다시 몰래 들어갔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기도 하며 모성애를 느끼게 해주려고 노력해보았다.

주름진 얼굴에 머리가 하얗게 센 어머니의 얼굴은 비통함에 젖어 “졸라만! 내 아들 졸라만!”하고 외쳐댔다. 
그러나 그때 만쿠르트가 된 아들은 낙타 그늘에 숨어서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를 향해 팽팽하게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누군가 낯선 자가 접근하면 무조건 활을 쏘아 버리라는 주안주안 족 주인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얀 낙타 아크마야를 탄 어머니는 아들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쏘지 마!”라고 외쳐봤지만 화살은 허공을 가르며 이미 그녀의 옆구리에 박힌 후였다. 어머니는 낙타의 목을 붙잡은 채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그때 그녀의 하얀 목도리가 떨어져 새로 변해 날기 시작하였다. 
새가 외쳤다. “얘야, 기억해봐, 넌 누구의 아들이니? 네 이름이 뭐니? 너의 아버지는 도넨바이다! 도넨바이!”
그날부터 그곳에서는 밤마다 도넨바이란 새가 날아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묻힌 곳은 “어머니의 안식”이라는 뜻의 “아나 베이트 묘지”라고 불렸다.

중앙아시아의 튀르크 인들은 자신의 뿌리와 근본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 7대 조상까지는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부끄럼 없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튀르크 인의 심성 속에는 한국인처럼 조상숭배 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자존심이 강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근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튀르크 인들에게 기억을 빼앗긴 채 만쿠르트로 살아가는 
상황이야말로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가장 끔찍한 비극이었을 지도 모른다.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렸던 것의 결말은 결국 친모살해와 같은 반인륜적인 비극을 초래하지 않았던가.

기억을 말살한 후 만쿠르트로 만들었던 주안주안 족의 고문은 중앙아시아 튀르크 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다. 
하지만 그러한 반인륜적 행위가 과연 주안주안 족에게만 국한 되었을까? 
인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을 세뇌하고 기억을 뺏어버리려는 시도는 국가에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시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