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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경의 잊혀진 유라시아 이야기-2] 아버지를 활로 쏴 고슴도치 만든 흉노족 샤누이 모데

바람아님 2015. 7. 19. 08:09

(출처-조선일보 2015.04.19 오은경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리더라면 사적 가족적 '연(緣)'을 저버려야

중국식 사관의 영향으로 우리는 북방민족들을 오랑캐 또는 야만족으로 간주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 북방민족은 
우리와 고대문화를 공유했던 형제국가들이었고 세계적 제국을 이루었던 민족들이었다. 그중의 하나가 흉노였다. 
흉노는 한민족과 마찬가지로 탁월한 기마민족으로써 활을 잘 쏘기로 유명했으며 중국을 굴복시키고 조공을 받았던 
강력한 대제국이었다.

흉노의 샤뉴이 모데(선우묵돌)는 거대한 중국을 굴복시키는 촉매가 되었던 휘파람 소리를 내는 화살 “명적(鳴鏑)”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인을 사시나무처럼 떨게 하였던 그의 강력한 지도력이었다. 
대의를 위해 그는 자신의 피붙이까지도 과감하게 도려낼 줄 아는 위인이었다.
투르크메니스탄 지폐에 등장하는 샤뉴이 모데.
투르크메니스탄 지폐에 등장하는 샤뉴이 모데.
모데는 계모와 아버지의 음모로 적대국인 이웃 유엣지(월지)로 인질로 잡혀갔지만 오히려 준마를 탈취하여 고향으로 돌아온다. 
아버지는 적국에서 살아 돌아온 아들을 기특히 여겨 그를 죽이지 않고 만여 가구가 사는 투멘 지역(연해주와 두만강 이북 
지역)을 하사한다. 모데는 거사를 준비하기 위해 주민들을 기마대로 만들어 말 타고 활 쏘는 법을 가르친다. 마침내 어느 날 
그는 자기가 명적을 쏘면 그 방향으로 화살을 쏘라고 병사들에게 명령한다.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는 모두 처형한다고 
엄명을 내렸다.
고대 흉노족이 사용한 명적./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학 박물관 제공
고대 흉노족이 사용한 명적./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학 박물관 제공
그는 병사들의 군기가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보기 위해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아르가마크(준마)를 향해 명적을 쏜다. 
너무도 아름답고 빼어난 지도자의 준마에게 감히 화살을 쏘지 못하고 망설였던 군사들은 그 자리에서 목이 날아간다. 
얼마 후 모데의 화살은 절세미인으로 명성이 자자한 자신의 아내를 겨누고 만다. 모데의 측근 호위대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지도자의 아내에게 도저히 화살을 날리지 못한다. 그들은 어김없이 처형당하고 만다.

그러고서 모데는 사냥 중이던 아버지 투만의 애마를 향해 명적을 쏜다. 그러자 모두 일사불란하게 활시위를 당긴다. 
병사들이 일제히 자신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확인한 모데는 드디어 아버지를 향해 활을 쏘고, 결국 아버지 투만의 몸은 
화살에 박혀 고슴도치가 되어버린다. 이어 계모와 이복형제를 처치한 모데는 흉노의 지도자인 샤뉴이(선우)가 된다. 
(기원전209년).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흉노족 간의 내분으로 그들의 세력이 약화하였을 것이라고 판단한 둔후(東胡)는 끊임없이 
흉노에게 조공을 요구하다가 심지어는 황무지까지 떼어달라고 한다. 이때 흉노의 대신들은 가축도 치지 못할 황무지를 
위험을 무릅쓰며 지켜야 할 이유가 없다고 제언한다.
샤뉴이 모데./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학 박물관 제공
샤뉴이 모데./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학 박물관 제공
모데는 “토지는 국가의 기본이거늘 어찌 국토를 포기할 수 있겠느냐!”라고 대로하며 황무지를 포기하자고 제언한 대신들의 
목을 친다. 이어 정예 기마부대를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둔후를 토벌한다. 흉노는 마침내 만주의 거대한 초원지역을 점령하고, 
기세를 몰아 한(漢)나라를 굴복시켜 조공까지 받아내는 대업을 이루면서 막강한 유라시아 제국을 건설한다.

흉노가 유라시아의 맹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대의를 위해서라면 사적 “의리”와 자신의 이익을 과감히 포기하고 자신에게 
냉혹할 줄 알았던 모데의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모데의 리더십은 국가와 기업, 나아가 인류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가야 하는 글로벌 지도자라면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러 지도자들이 흔히 범해온 가장 큰 패착은 측근을 비롯한 주변 인물에 얽매인 사적이거나 가족적인 “연(緣)”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그러한 연에서 벗어나 열린 세계를 지향하고 세계로 뻗어나가야 하는 한민족의 시대적 당위성을 고려할 때 우리는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기마민족의 후예라는 것을 상기해 봄 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