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8.18 김태익 논설위원)
반세기도 더 전에 영국 총리를 지낸 처칠의 사진을 서울 광화문 길거리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왼손에 실크해트를 들고 다리를 꼬고 앉은 채 굵은 시가를 물고 있는 익숙한 모습이다.
옆에는 병색 짙은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가 지친 듯 앉아 있다.
월드피스자유연합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열고 있는 사진전에서다.
그러고 보니 이달 들어 카이로회담·얄타회담·포츠담선언 같은 역사적 사건 이름을 여기저기서 많이
그러고 보니 이달 들어 카이로회담·얄타회담·포츠담선언 같은 역사적 사건 이름을 여기저기서 많이
접했다. 카이로선언-'강대국들이 한국의 독립을 약속', 얄타회담-'해방된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 논의',
포츠담선언-'소련의 대일(對日) 전쟁 참전과 한반도에 대한 미·소 분할 점령 결정'….
의미도 잘 모르고 외웠다가 잊고 살았던 사건들을 다시 불러낸 건 역시 '광복 70주년'이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終戰)을 앞두고 한국의 운명을 요리한 드라마의 주인공은
2차 세계대전 종전(終戰)을 앞두고 한국의 운명을 요리한 드라마의 주인공은
루스벨트와 처칠,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장제스였다.
이들은 나라와 도시를 옮겨다니며 일본·독일 패망에 따른 전리품을 챙기느라 주판알을 튕기고 신경전을 벌였다.
이런 전승국 수뇌들의 모습에 앞날을 모른 채 남의 나라 땅을 전전하던 우리 임시정부 요인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태극기 물결과 애국가 열창 속에 광복 70주년 축제는 끝났다.
태극기 물결과 애국가 열창 속에 광복 70주년 축제는 끝났다.
이 해를 보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게 있다면 우리에겐 감격 그 자체였던 광복이
얼마나 열강의 이해(利害)가 중첩된 세계사적 사건이었는지 깨닫는 일이다.
그래야 70년 전 광복이 지금의 국제 역학관계 속 대한민국에 주는 교훈을 읽어낼 수 있다.
청나라의 간섭을 받다가 일제의 식민지로 떨어지고 해방과 분단,
청나라의 간섭을 받다가 일제의 식민지로 떨어지고 해방과 분단,
남북한 별도 정부 수립, 6·25전쟁을 겪기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어느 하나도 세계사의 흐름,
특히 국제 세력 판도의 변화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외세에의 저항과 주체적 대응만을 강조하고 외국 개입이 없었으면 우리도 잘될 수 있었다는
'내재적 발전론'을 떠받들면서 나라 밖 역사에 눈감았던 것이 그간 한국사 연구와 역사 교육의 현실이었다.
우리가 아베 담화의 문구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이달 초 일본 문부성은 고등학교에서 일본사와 세계사를 합해
우리가 아베 담화의 문구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이달 초 일본 문부성은 고등학교에서 일본사와 세계사를 합해
'역사 총합(總合)'이란 필수 과목을 새로 만들겠다는 교육과정 개편안을 내놓았다.
근현대 일본사와 세계사를 하나로 가르쳐야 '지금 진행되고 있는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글로벌 시대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 교육부는 지난 5월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세계사 관련 부분을 대폭 줄이겠다는
역사 교육과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개항기 서구 열강의 접근과 조선의 대응' '일제 침략과 관련된 국제 정세의 변동과 동아시아의 변화'
'해방기 건국 노력과 국제사회의 움직임' 등 기존 교육과정에 구색으로나마 있던 세계사 관련 항목마저 교과서에서
사라지게 될 운명이다. 이런 내용을 빼고 과연 한국 근현대사를 쓸 수 있는지 의문이다.
현재 일본 역사 교과서는 정권의 과거사 미화, 한국 역사 교과서는 좌파 사관에 의한 대한민국사 깎아내리기 문제가 있다.
현재 일본 역사 교과서는 정권의 과거사 미화, 한국 역사 교과서는 좌파 사관에 의한 대한민국사 깎아내리기 문제가 있다.
아이들에게 세계를 향한 창(窓)을 어떻게 열어줄 것이냐 하는 것은 이와 또 다른 차원의 중대 문제다.
두 나라 세계사 교육의 차이가 광복 100년이 되는 30년 후 어떤 결과를 몰고 올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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