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09.15
중앙일보 <2015년 9월 4일 30면>
역사 교과서, 국정 발행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국·검정 여부는 이달 말 교육부가 고시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포함된다. 최종 결정권자인 황우여 부총리가 국정화 뜻을 비춰 국정이 기정사실화하는 양상이다. 역사학계와 교사들은 황당해한다. 서울대 역사 전공 교수 34명은 엊그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자주성을 보장한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며 반대 성명을 냈다. 역사 교사 2255명도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교육이 우려된다”며 불복종 운동을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정이 국정화를 밀어붙이면 교육 현장에 큰 혼란이 벌어질 게 자명하다.
세계적으로도 역사 교과서는 검정화가 대세다. 미국·유럽 등은 자유발행체제로 다양하고 질 좋은 교과서를 제공한다. 국정은 관제사관(官制史觀)을 주입하는 북한·베트남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헌법재판소도 1992년 국정교과서가 “위헌은 아니나 바람직한 제도는 아니다”라고 판결한 바 있다.
따라서 국정은 올바른 대안이 될 수 없다. 과거 군사정부 때처럼 입맛에 맞게 교과서를 주무르는 시대는 지났다. 대안은 올바른 정사(正史)가 담긴 질 좋고 내용 풍부한 교과서다. 현행 검정제를 강화해 집필 기준에 국가 정체성 내용을 명시하고 편향성을 엄격히 심사해야 한다. 현재 대여섯 명에 불과한 집필자도 대폭 늘려야 한다.
역사학계의 치열한 노력도 필요하다. 보수·진보 각자 주장만 하지 말고 중립적이고 균형 잡인 교과서 개발에 힘을 결집해야 한다. 당장 공동 토론회부터 열 필요가 있다. 당정의 역할은 바로 이런 일을 돕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교과서를 바꿀 셈인가.
한겨레 <2015년 9월 3일 31면>
서울대 역사교수들도 나선 ‘국사 국정화’ 반대
이들의 논리는 명쾌하다. “정부가 공인한 하나의 역사 해석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결과를 가져올 국정교과서는 역사교육의 본질에 정면으로 위배”되며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헌법정신과 합치하지 않는다.” 실제 그렇게 하는 나라는 북한을 비롯한 일부 억압적 체제뿐이다. 5년 주기로 교체되는 정권의 역사관에 따라 교과서가 흔들리게 된다면 세계적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이런 우려가 기우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국회 연설에서도 확인됐다. 김 대표는 “우리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굴욕의 역사’라고 억지를 부리는 주장은 이 땅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표명한 역사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 말을 통해 김 대표는 ‘집권세력이 선호하는 특정 역사관만을 가르치고 싶다’는 의도를 노골화한 셈이다.
“부정의 역사관은 절대 피해야 한다”는 김 대표의 시각 자체도 잘못됐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는 것 못지않게 그 실패와 폐단을 성찰하는 데 있다. 똑같이 침략전쟁을 일으켰지만 독일은 철저히 반성하는 역사관을 가진 데 반해 일본은 틈만 나면 과오를 숨기고 영광만 포장하려 한다. 어느 게 옳은 태도인지는 자명하다. 김 대표가 말하는 ‘긍정의 역사관’이란 게 현 정부 들어 검정에 합격했던 교학사 교과서처럼 친일과 독재 같은 오욕의 역사를 왜곡·미화해야 한다는 의미인지 묻고 싶다.
거듭 강조하지만 집권세력이 강요하는 ‘관제 역사’는 이제 인류 문명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폐품이다. 서울대 교수들의 지적처럼 역사 교과서 서술을 정부가 독점하게 되면 “역사적 상상력과 문화 창조 역량을 크게 위축시키고, 민주주의는 물론 경제 발전에도 장애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국가적 수치이자 숱한 폐단만 낳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당장 중단돼야 한다.
[논리 vs 논리] “교과서는 학계·교육계 몫” … “역사관 독점하려는 의도”
지난 10일, 국회의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전환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이라 불리는 ‘2015 개정 교육과정’ 및 ‘교과서 발행체계’가 이달 말까지 확정 고시될 예정이어서 시한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관심의 초점은 한국사 교과서의 발행체제 변화로 모아졌다. 황우여 교육부총리는 이번 국감에서 “검정제와 국정화 두 가지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지난 1월에는 “교실에서의 역사를 한 가지로 아주 권위 있게, 또 올바르고 균형 있게 가르치는 것은 국가 책임”이라고 발언한 바 있어 야당에서는 정부가 국정교과서 쪽으로 정책의지를 가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교과서 발행제도는 교육부총리의 행정명령으로 시행된다. 국정화로 결정되면 2017년부터, 현행 검정제를 유지하면 2018년부터 새 교과서를 적용하게 된다.
바로 지금이 그 갈림길을 앞둔 시점이다. 그래서 국감을 앞두고 관련 학계와 교육계의 움직임도 분주했다. 지난 2일 서울대 역사 전공 교수 34명이 한국사 국정교과서 재도입에 대한 반대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고, 역사교사 2255명도 반대 선언문을 발표했다. 9일에는 원로 교수 등을 포함한 역사연구자 1167명도 반대 성명을 냈다. 이에 맞추어 한겨레와 중앙도 정부의 국정화 방안과 역사교육 주체들의 움직임을 다루는 사설을 실었다. 두 신문 모두 국정교과서를 정부 주도의 ‘관제 사관’으로 평가하면서 비판의 입장을 취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역사 교과서가 바뀐다면 교육현장의 혼란이 클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역사 교과서 자체가 역사 문제의 한복판에 서 있는 중이다.
중앙과 한겨레는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공통적으로 반대하면서도 그 초점이 서로 달랐다. 중앙은 교과서 발행체제의 합리성을 주로 다루었고, 한겨레는 집권세력의 역사관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한겨레는 ‘역사’에, 중앙은 ‘교과서’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중앙은 검정제나 자유발행제를 시행하고 있는 선진국의 사례와 세계적 추세를 근거로 국정교과서는 좋은 교과서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합리적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정착시켜야 할 제도적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점이 눈길을 끈다. 교과서는 정치의 영역에서 다룰 것이 아니라 학계와 교육계의 몫이니 관련 주체들은 균형 잡힌 교과서 개발에 힘쓰고 정부는 이를 잘 도우라고 조언했다. 한편 한겨레는 국정교과서 방안 속에 역사관을 독점하려는 집권 세력의 의도가 있다고 의혹을 보냈다. 그래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 연설에서 밝힌 ‘긍정의 역사관’을 따져 물었다. 과거를 반성하는 독일의 역사관과 과오를 숨기는 일본의 역사관을 비교하면서 긍정의 역사관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려는 것 아니냐며 논리적 반박에 집중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갈등은 학문과 교육, 정부와 민간, 제도와 이념 문제 등 여러 겹의 동심원을 그리고 있다. 역사관은 과거를 바라보는 눈이고, 교육은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두 가지 모두 현재의 제도와 시대정신 안에서 결정된다. 그래서 역사 교과서는 과거와 미래를 얻기 위한 현실의 싸움터가 되고 있다. 중앙과 한겨레의 사설은 역사와 교육 두 측면에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을 적절하게 꼬집고 있다. 정부와 관련 주체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불씨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국정교과서 논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지난해 초 교육부가 ‘2014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 개정과 관련해 교과서 발행체제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을 때부터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됐다. 교과서 발행 재검토의 실 내용이 검인정 체제 유지냐, 국정 전환이냐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책이 가시화됐을 때는 새로 도입되는 통합사회와 통합과학까지 포함됐다. 그러나 두 과목은 검정제로 남고 지금은 한국사만 대상이 돼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우리의 헌법은 교육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지향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교과서는 교육과정의 구현체이고, 교육과정은 교육 정책에 영향을 받으므로 교과서는 교육정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만약 정부 정책을 펼치는 데 교과서를 적극적 수단으로 삼는다면 교과서는 가장 정치적인 성격의 도서가 된다. 우리나라 교과서의 역사를 보면, 근대 교과서는 1895년에 최초로 등장한다. 이후 검인정 체제를 유지하다 1974년에 국정 체제로 바뀌었다. 그 후 민주화의 영향으로 92년 헌법재판소는 “국정교과서가 위헌은 아니나 바람직한 제도는 아니다”고 밝혔고, 2007 개정 교육과정이 도입될 때 전면 폐지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유신 시대와 군사정권 시절 정부 정책을 미화했던 교과서로 배우고 자란 기억 때문에 현 정부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려 한다는 혐의를 둔 한겨레는 관제 역사관을 특별히 경계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북한·베트남·몽골 등 국정교과서를 채택한 소수 국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검인정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은 민간이 제작한 후 지방 정부에서 심의(독일)하거나 정부 주도 심의기관에서 심사(일본)하는 검정제를 채택하고 있다. 프랑스·호주·미국은 민간이 제작한 교과서를 지방정부나 교육부가 교과서로 채택해 주는 인정제를 실시하고 있다. 영국·스웨덴·덴마크 등은 민간이 제작한 각종 도서 중 교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책을 선택하는 자유발행제를 시행하고 있다. 대체로는 검정에서 인정으로, 인정에서 자유발행제로 부분적 이동이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이런 흐름은 다양성과 창의성을 가진 자율적 인간 양성을 교육 본령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국가도 국가에 의한 관리 체제가 작동하고 있으며 교과서를 둘러싼 정치적 성격의 갈등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학계와 교육계의 합리적 논쟁을 우선으로 하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중앙이 교과서 제도 마련의 합리적 절차를 강조한 것은 세계적 안목과 교육의 시대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황종택의新온고지신] 일생지계재어유(一生之計在於幼)
세계일보 2015-9-14교육 중에서도 역사교육은 인간에게 깊은 삶의 지혜를 준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듯, 지난 역사의 성공과 실패 사례에서 오늘의 교훈을 삼는 것이다. 이른바 ‘복거지계(覆車之戒)’다. “앞 수레가 엎어진 바큇자국은 뒤 수레에 교훈이 된다(前車覆 後車戒)”는 풀이다. 저 옛날의 하·은·주(夏殷周) 시대를 되돌아보면 그때는 왜 잘했고, 실패해 나라가 망했는지 알게 한다. 회사와 단체의 성장 및 실패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처칠의 명언은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정말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확실치 않아 보인다. 한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중 65%가 6·25전쟁을 북침이라고 응답했다. 이밖에도 야스쿠니신사를 관광지로 알고,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가 헷갈리는 등 청소년들의 역사인식 부재가 심각한 수준이다. 청소년들의 역사인식을 제고를 위한 근본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정부·여당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이 정치·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서울대 전체 역사 관련학과 교수의 77%가 의견을 모은 역사교수 34명과 전국 역사교사모임 소속 교사 2255명이 성명을 내 국정교과서 추진을 반대했다.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 역사의 ‘축소’로 이어지는 우를 범하지 말하는 것이다. 충분한 논의를 거쳐 민족동질성 회복과 자긍심 고취의 장이 되는 역사교과사가 돼야 하겠다.
“눈은 두 곳을 보면서 밝게 볼 수 없다(目不能兩視而明)”고 한탄한 ‘순자’의 말은 무엇을 뜻하겠는가. 미래 세대인 아이들을 위한 역사교과서의 발간을 기대한다.
황종택 녹명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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