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사설] 정치 暴走에 아무도 제동 못 거는 일본을 보는 불안감

바람아님 2015. 9. 20. 09:12
조선일보 2015-9-19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밀어붙인 집단자위권 행사 관련 11개 법안이 19일 새벽 야당의 격렬한 반발 속에 결국 참의원(參議院)을 통과했다. 이로써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기 위한 법적 절차가 모두 마무리됐다. 이번에 새로 생기거나 개정된 법안들의 핵심은 일본 자위대가 일본 본토를 벗어나 세계 어디서나 동맹국의 전쟁 활동을 지원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전범(戰犯) 국가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70년간 직접 공격받았을 경우에만 반격할 수 있는 ‘개별자위권’만 행사하고 집단자위권 행사는 안 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지켜왔다. 이것이 ‘평화헌법’이라고 하는 헌법 9조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해석이었다. 아베 총리는 개헌(改憲)을 통해 평화헌법을 바꾸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자 ‘헌법 해석 변경’이라는 변칙적 방식을 동원했다. 그러더니 이번엔 관련 법률을 모두 개정해 교전권(交戰權) 자체를 부정한 헌법 9조를 사실상 사문화(死文化)했다.


우리가 이번에 놓쳐서는 안 될 것은 일본 사회의 복합성·이중성이다. 일본 국민은 이번 법안 처리에는 다수가 반대했지만 선거에선 자민당과 아베 총리를 밀어주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50% 이상이 ‘집단자위권 법안’에 반대했다. 여기에 법안 처리를 보류해야 한다는 사람까지 더하면 70% 안팎이 반대 쪽에 섰다. 헌법학자들도 다수가 ‘헌법 해석 변경’은 위헌이라고 했고 심지어 자민당이 추천한 헌법학자마저 국회에서 위헌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일본 국민은 작년 12월 중의원 총선에서 자민당에 표를 밀어줬다. 지난 4월 지방선거에서도 자민당 후보들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두 선거는 아베 총리가 헌법 해석을 변경하고 11개 안보 법제 추진을 공언한 뒤 치렀는데도 그런 결과가 나왔다. 일본에서 전혀 상반된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일본 국민이 ‘아베의 폭주(暴走)’를 걱정하면서도 중국의 경제·군사적 급부상을 우려해 결국 ‘전쟁하는 나라’로 가는 것을 용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지난 세기(世紀)에도 전쟁으로 치달을 때 군부(軍部)의 일방적 폭주에 반대하면서도 제동을 걸지 못한 전례가 있다.


일본은 미국의 지원 아래 이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일은 올 4월 정상회담에서 중국에 맞서 두 나라 사이의 동맹 관계를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단계로 격상하기로 했다. 국방 예산을 줄여야 하는 미국과 돈이 들더라도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일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결국 중국과 일본의 급변(急變)에서 촉발된 동북아 정세 변화는 우리에게 직접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동아시아 안보 질서가 ‘미·일 대(對) 중국’이라는 거대 블록 간의 갈등·대립 구도로 고정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주변 강국들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는 것 못지않게 우리가 주도적으로 한반도 정세를 이끌어가는 국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