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5-09-26
신랑 쪽에서는 억만 재물을 기울여 호랑이 눈썹에 이르기까지 혼수 준비를 했다. 화려한 혼사였다. 어느덧 결혼한 지 석삼년이 지나고 부부 나이도 사십 줄에 들어섰다. “꽃구경 나비구경 다녀와서 어찌 이렇게 눈물만 흘리십니까?” “날짐승도 먼저 난 새끼는 뒤세우고 뒤에 난 새끼는 앞세워 날아다니는데, 부럽기만 하구려.” 자식 없는 게 서러웠던 것이다. “경상도 아랫녘에 용한 점쟁이가 있답니다.” 팔자나 물어 보자는 부인의 제안이었지만, 점쟁이의 대답은 간단치가 않았다. “백일 동안 금상사 부처님께 공을 들여야 자식을 보겠습니다.” 어쩌랴. 대감과 부인은 정성껏 백일기도를 드리고 청룡황룡 얼크러진 양 동침했다. 과연 그달부터 태기가 생겼다. “고추로구나.” 부인은 열 달 만에 해와 달이 돋은 것만 같은 잘생긴 사내아이를 낳았다. “산천도 무정하고 성인(神)도 무정하구나.” 아기는 사흘이 되어도 첫이레가 되어도 세이레가 되어도 석 달이 되어도 눈을 뜨지 않았다. 부부는 통곡하며 아기 이름을 ‘거북이’라고 지었다. 세월은 흘러 아기의 나이 세 살이 되었을 때 대감과 부인이 동침하니 또 태기가 생겼다. “고추로구나.” 이번에도 잘생긴 사내아이였다. 부부는 얼른 아기의 눈부터 들여다봤다. 샛별 같은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하지만 사흘 만에 아기의 등을 만져보니 꼽추요, 다리를 만져보니 앉은뱅이였다. 기가 막혔다. 부부는 아기 이름을 ‘남생이’라고 지었다.
부부는 많은 재물을 남긴 채 화병으로 죽었고, 형제는 가만히 앉아서 재물을 쓰기만 해 이내 가난뱅이가 되었다. “병신 둘을 어찌 그냥 먹이느냐.” 밥 빌러 가는 집마다 문전박대였다. 서럽게 울던 동생이 자신들을 태어나게 한 부처님께 빌어 보자고 했다. “나는 앞이 어두운데 어떻게 가겠니?” “형이 날 업으면 되겠소. 형의 막대기를 내가 건네 쥐고 똑똑 소리를 낼 테니 그리로만 가면 되오.” 형제가 금상사 입구에 들어서려는데 연꽃 핀 늪에 솥뚜껑 같은 생금이 둥둥 떠다녔다. “형님, 생금을 건집시다.” “우리에게 무슨 복이 있다고 그걸 건진단 말이냐? 본 체 말고 그냥 들어가자.” 절에서는 형제를 환대했다. 초당에 맞아들이고 글공부를 시키고, 하루에 세 번씩 흰쌀밥을 지어 먹이도록 했다. 불목하니는 두 형제 때문에 일이 너무 힘겨워지자 스님 몰래 형제를 두들겨 팼다. “늪에 생금이 있으니 건져 가오.” 그러나 불목하니의 눈에는 생금이 금 구렁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화가 난 불목하니는 형제를 다시 두들겨 팼다. 맞다 못한 형제가 나가 보았다. 틀림없는 금이었다. 형제는 생금을 가져와 부처와 절을 도금했다. “거북아, 남생아. 네 눈을 뜨여 주마. 네 등과 다리도 고쳐 주마.” 부처님의 말씀이었다. 그 후 형제는 여든한 살까지 잘 살다가 죽어 저승에서 인간의 영혼을 맡은 신이 되었다. 빌어 본다. 거북이와 남생이 신이여, 이 땅 어린아이들의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돌봐주기를.
최원오 광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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