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10.08 양상훈 논설주간)
전투기 航電 기술은 부잣집 재산 같은 것
월급쟁이 연봉 높다고 돈으로 살 수 없어
선진국 최종 관문인 '지식·경험' 재산 축적엔 越班도 지름길도 없다
중동에 있는 초고층 건물을 우리 건설사가 지었다고 해서 그런 줄 알고 있었다.
국제 다큐멘터리 채널에서 그 건물 건축 과정을 방송하길래 그 건설사 이름이 나오길 기대하며 보았다.
끝날 때까지 우리 건설사 이름은 정말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건물의 기초 개념 설계와 핵심 기술, 문제 해결 전부를 선진국 백인들이 한 것이었다.
이상해서 건설 회사에서 오래 일했던 분에게 물었더니 "우리 건설사는 공사 인부 모아서
선진국 전문가들이 하라는 대로 한 것"이라고 했다.
KFX(한국형 전투기) 개발에서 우리가 봉착한 문제도 다르지 않다.
KFX(한국형 전투기) 개발에서 우리가 봉착한 문제도 다르지 않다.
미국이 주지 않는 네 가지 기술과 관련해 그 장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기계 덩어리인 그 장비에 실제 생명력을 불어넣는 소프트웨어 기술이 없는 것이다.
전투기 소프트웨어 기술은 두바이 고층 건물 기초 개념 설계처럼 서양 백인들이 거의 독차지하고 있다.
선진국 보유 기술은 조건만 맞으면 한국 같은 외국에 팔 수도 있는 게 있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외국에 넘길 수 없는 것이 있다.
전투기 항전(항공 전자)은 후자 영역에 있다. 미국만이 아니라 어떤 유럽 국가도 마찬가지다.
초대형 건축물이나 스마트폰의 최초 개념 설계, 전투기 항전과 같은 절대 보호 기술은 선진국 국가 경쟁력의 결정체다.
달리 말하면 이 역량 여하에 따라 선진국이냐 아니냐가 갈린다.
우리는 그동안 선진국이 돈 받고 파는 기술, 이른바 범용 기술을 이용한 대량생산과 치열한 판매로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절대 이전 불가 기술'이라는 마지막 관문 앞에 서 있다.
'선진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다' '수출이 준다' '늘 불경기다' '잠재성장률이 떨어져 난쟁이가 된다'
'청년들 일자리가 없다'는 모든 고통이 결국엔 우리가 운명적으로 도달할 수밖에 없었던 이 예정된 최종 관문 앞에서
겪는 성장통이다.
서울 공대 교수들이 쓴 '축적의 시간'에 따르면 선진국 절대 보호 기술은 어떤 비밀문서에 적혀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 공대 교수들이 쓴 '축적의 시간'에 따르면 선진국 절대 보호 기술은 어떤 비밀문서에 적혀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문서화할 수도 없다. 그 나라 인재들이 수십, 수백년간 대(代)를 이어가며 개인과 조직의 머리와 가슴에 체화한
유·무형 가치다. 세계적 거대 교량을 최초 개념 설계하는 서양 전문가들의 도구는 도화지와 연필 하나라고 한다.
중세에 대성당을 지을 때부터 전수돼온 유럽 건축 기술과 창의력의 정수는 그들 머릿속에 있다.
이런 기술은 그 기술을 보유한 회사를 사들여도 확보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레이더와 같은 전투기 항전 장비를 구동하는 알고리즘(작동 방식)과 소스코드(프로그램)는 어떤 천재가 불현듯
레이더와 같은 전투기 항전 장비를 구동하는 알고리즘(작동 방식)과 소스코드(프로그램)는 어떤 천재가 불현듯
무엇을 깨달아 나온 산물이 아니다.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서 그때마다 난관을 돌파하는 고통을 겪어가며 하나하나 쌓아올린 것이다.
미국 같은 초대국도 새로운 세대 전투기의 항전을 완성하는 데 10~20년 시간이 걸린다.
말하자면 선진국은 대대로 재산(stock)이 쌓인 부자이고 우리는 연봉(flow) 좀 받는 월급쟁이인 셈이다.
'전에 없던 개념을 최초 설계하는 능력'이라는 재산은 가치 사슬의 제일 앞 단계에 있다.
이 재산이 있으면 엄청난 부와 기회, 권력이 줄줄이 달려나온다.
그 귀중한 재산을 돈 준다고, 동맹국이라고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만저만한 오산이 아니다.
범용 기술로 대량생산하는 데는 압축 성장도 있고, 월반(越班)도 있다.
범용 기술로 대량생산하는 데는 압축 성장도 있고, 월반(越班)도 있다.
그러나 경험과 지식을 축적해 창조적 개념 설계 능력을 갖추는 데는 압축도 월반도 있을 수 없다.
직접 해보며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면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지식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선진국이 된 나라는 하나도 없다.
'축적의 시간' 저술에 참여한 서울 공대 멘토들은 근본적 가치를 가진 경험과 지식은 돈으로 살 수 없고
그 역량을 확보하는 데는 지름길이 없다는 사실을 빨리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문제는 우리에게 경험과 지식을 축적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은 시간 부족을 공간으로 극복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에게 경험과 지식을 축적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은 시간 부족을 공간으로 극복하고 있다.
선진국이 100년 걸려 경험한 것을 10년간 10배 더 많이 경험해보는 식이다. 우리는 중국 같은 공간도 없다.
서울 공대 교수들은 '우리는 산업이 아니라 사회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답했다.
사회 인센티브 체계를 바꿔 모든 주체가 축적을 지향하도록 함으로써 축적의 범위를 산업만이 아니라 그 바깥까지 극적으로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한 분야에 인생을 바친 마이스터를 제대로 대우하고 사회 곳곳에 만연한 순환 보직을 폐지해
모든 곳에서 시행착오의 경험이 축적되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사회 전체가 일시적 총력 동원이 아니라 장기적
경험 축적 사회로 바뀌면 100년이 50년, 30년으로 줄 수 있다는 제언이다.
조선사들이 해양 플랜트로 엄청난 적자를 봤다.
조선사들이 해양 플랜트로 엄청난 적자를 봤다.
너무 비싼 수업료를 내긴 했으나 거칠 수밖에 없는 경험과 지식의 축적 과정이기도 하다.
18조원 사업 KFX가 성공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답할 수 없다.
다만 KFX를 하지 않으면 창조적 개념 설계를 할 수 있는 경험 축적 기회가 사라지는 것만은 분명할 것이다.
======== [박정훈 칼럼] "중국에게 배우는 걸 부끄러워 말라" ============
(출처-조선일보 2015.10.08 박정훈 부국장·디지털뉴스본부장)
고객이 제품 갖고 놀게 하는 參與 경영으로
質 향상시킨 샤오미의 베끼기 아닌 혁신 內需로
기술 축적한 중국을 逆모방 하는 게 우리 현실
우월감 털고 위기감 가져야
시작 11년 만에 세계 최강으로 부상한 중국 고속전철의 초고속 약진이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이것을 '공포감'으로 표현했다.
지난주 한 포럼에서 그는 "죽어라 뛰는데 차(중국 기업)가 휙 지나가는 느낌을 아느냐"며 자신을 떨게
하는 공포의 실체를 토로했다.
모바일 분야에서 중국이 우리를 "무려 2년" 앞섰다며 곧 엄청난 해일로 덮쳐올 것이라고도 했다.
카카오톡을 만든 대한민국 혁신의 아이콘도 중국발(發) 공포엔 속수무책인 듯했다.
김 의장이 예로 든 게 IT 업체 샤오미(小米)다.
김 의장이 예로 든 게 IT 업체 샤오미(小米)다.
창립 5년 된 이 신생 기업이 천하의 삼성전자를 위협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조차 못했다.
지난해 샤오미는 중국 스마트폰 시장 1위로 올라섰다.
부동(不動)의 중국 1위를 달리던 삼성은 여기에 밀려 4위까지 추락했다.
처음엔 저가(低價) 베끼기 공세려니 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샤오미 쇼크는 놀라운 혁신의 결과였다.
애플과도 다르고 삼성은 흉내조차 내기 힘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한 것이었다.
샤오미의 경영 모델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사례 연구에 나오는 어떤 선진 기업보다 인상적이다.
핵심은 그들이 외치는 '사용자를 친구로'란 구호에 압축돼 있다. 보통의 기업에 고객이란 돈지갑을 열게 해야 하는 대상이다.
반면 샤오미는 고객과 친구처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전략을 구사한다.
고객들이 친구가 돼 비즈니스 프로세스 전반을 도와주도록 한다는 개념이다. 키워드는 '참여'다. 샤오미는 연구·개발과
서비스, 경영 판단에까지 고객을 참여시켰다. 고객에게 제품이 아니라 '참여감(感)'을 팔겠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샤오미 스마트폰의 OS(운영체제)는 일주일마다 새롭게 업데이트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샤오미 스마트폰의 OS(운영체제)는 일주일마다 새롭게 업데이트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속도전(戰)이 가능한 것은 '10만명 개발팀'을 거느린 덕분이다. 샤오미의 개발팀 직원은 100명뿐이다.
하지만 10만명에 달하는 열성 고객이 업데이트 작업에 참여해 문제점을 발굴하고 개선점을 제시해준다.
샤오미는 제품 광고도 하지 않는다. 친구 같은 고객들이 인터넷과 SNS를 통해 소문을 내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어떤 혁신 기업도 이렇게 거대한 고객 집단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자발적 참여의 비결은 고객들을 '놀게' 하는 것이다. 샤오미는 고객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갖고 논다'는 개념으로
자발적 참여의 비결은 고객들을 '놀게' 하는 것이다. 샤오미는 고객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갖고 논다'는 개념으로
접근한다. 샤오미는 참여감을 제공한 '놀이터'를 펼쳐놓을 뿐이다.
그러면 고객이 스스로 찾아와 놀고 즐기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준다는 것이다.
샤오미의 하드웨어는 아이폰을 베꼈을지 몰라도 경영 철학은 어느 첨단 기업보다 독창성이 넘친다.
고객층이 충성스럽기로 유명한 애플도 이런 참여형 경영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샤오미는 세계적 혁신 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미 샤오미는 세계적 혁신 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MIT는 '세계에서 가장 스마트한 50대 기업' 중 2위에 샤오미를 올렸다.
애플은 16위였고, 삼성은 순위에 들기조차 못했다.
삼성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지만 샤오미처럼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판 자체를 바꾸는 능력은 없다.
"공포감을 느낀다"는 김범수 의장의 실토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중국 하면 우리는 싸구려 모조(模造) 이미지를 떠올려 왔다.
중국 하면 우리는 싸구려 모조(模造) 이미지를 떠올려 왔다.
빨리 베껴 싸게 파는 주특기로 우리를 추격하지만 수준은 한 수 아래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젠 중국발 공포의 실체가 양(量)에서 질(質)로 바뀌었다.
거의 대등하게 우리와 품질을 겨루면서 어느 분야에선 이미 우리를 능가했다.
그들을 배우고 때에 따라선 베껴야 할 분야가 속속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소속 의원들에게 '축적의 시간'이란 책을 나눠주었다.
지난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소속 의원들에게 '축적의 시간'이란 책을 나눠주었다.
자기 분야 최고 전문가인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이 "목에 칼이 들어왔다"며 산업 기술의 위기를 증언한 책이었다.
김 대표가 왜 이 책에 꽂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오싹했던 대목은 역시 중국 공포였다.
집필에 참여한 교수들은 중국이 '생산 공장'을 넘어 '혁신 공장'이 됐다고 진단했다.
집필에 참여한 교수들은 중국이 '생산 공장'을 넘어 '혁신 공장'이 됐다고 진단했다.
중국이 거의 전 산업 영역에서 세계 최초 모델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떤 분야에선 우리가 중국에서 배우는 것이 이미 상식이 됐다는 것이다.
기술 축적에 필요한 시간적 제약을 중국은 거대한 공간(내수 시장)의 힘으로 극복해냈다.
이미 일부 제조업 현장에선 중국 제품을 베끼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일부 제조업 현장에선 중국 제품을 베끼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 교수는 국내의 한 중전기(重電機) 단지를 찾아갔을 때 목격한 충격적 장면을 전했다.
연구소 한쪽에 중국 제품을 갖다 놓고 그것을 본떠 제품을 설계하더라는 것이었다.
이런 '역(逆)베끼기' 현상은 점차 뚜렷해질 것이다.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의 조언은 냉혹하다.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의 조언은 냉혹하다.
우리가 중국에서 배워야 하는 현실을 "절대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중국산 '짝퉁'을 비웃었던 우리가 이제 중국을 모델 삼아 베껴야 하는 운명의 순간이 왔다.
책 "축적의 시간 : 서울공대 26명의 석학이 던지는 한국 산업의 미래를 위한 제언" 내용 소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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