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가 가사의 풍진세상은 먼지가 바람에 흩날리는 어지러운 세상을 말한다.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란 부분은 부귀와 영화만으로 희망을 채울 수 없다는 걸로 들린다. 젊은 시절 한대수는 그랬다. 그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금수저와 멀어진 사람이다. 할아버지 한영교 박사는 연세대 대학원장과 신학대 학장을 지냈다. 미국 유학 후 종적을 감춘 아버지는 핵물리학자로 알려졌다. 한대수는 고교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미국에 건너간 뉴욕 사진학교를 나왔다. 그는 밥 딜런, 존 바에즈를 보며 동시대 모던 포크를 온몸으로 흡수했다. 70년대 한국 활동 당시 '물 좀 주소'가 있는 1집과 '희망가'가 있는 2집을 냈지만 이 땅에선 음악을 계속할 방법이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대수는 90년대 중반부터다. 신문에 그의 칼럼이 실리고 록 페스티벌 무대에도 종종 섰다. 그전까지는 미국에서 사진가이자 음악가로 살았다.
한대수가 다시 한국을 떠나려 한다. 다음 달 25일 경주 공연이 마지막이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나이 일흔을 앞둔 지금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린 딸(양호)의 교육 문제 때문에 한국을 떠나는 것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학생들을 죽이는 시스템인데, 이런 환경에서 딸을 무사히 교육할 자신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대학생 시절 길에서 몇 번 한대수를 마주친 적이 있다. 이름 모를 팬인 나에게 그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환한 미소 뒤 생활은 그렇지 않았다. 아내 옥사나는 알코올 의존증에 걸렸고 67세 나이에 초등생 딸 양호를 위해 매일 출퇴근하며 '화폐'를 벌어야 한다. 자신을 "고시원에 사는 로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대수는 미국 이주를 고민하는 이유로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와 교육을 들었다. 라디오방송 하는 그에게 목소리는 곧 생계다. 60대 음악가가 생계와 딸의 교육으로 걱정한다. 이 땅에 사는 대부분이 이와 다르지 않다.
강남통신 김중기 기자 haahah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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