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9세기 초반 창건된 성주 법수사 터(法水寺址)에서 고려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심사역(사찰의 중심이 되는 구역)의 건물 배치가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성주군과 대한문화재연구원이 지난 6월부터 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1214번지 일원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고려시대 축조돼 조선시대까지 유지된 것으로 보이는 건물터 6개와 기타 시설물의 흔적을 찾아냈다고 26일 밝혔다.
조사가 이뤄진 곳은 보물로 지정된 법수사지 삼층석탑 주변으로, 1호 건물지를 중심에 두고 양쪽에 금당(金堂, 부처를 모신 건물) 터로 짐작되는 건물지가 드러났다. 1호 건물지에는 동서 방향으로 계단과 보도 시설이 있어 다른 건물로 이어지는 동선을 갖춘 것으로 파악됐다.
또 금당으로 추정되는 2호와 3호 건물지는 바닥에 벽돌을 깔고 직사각형이나 정사각형 형태의 대규모 불단을 갖췄던 사실이 확인됐다.
조사단은 가구를 짜듯이 구성한 가구식 기단(架構式 基壇)과 뛰어난 석재 가공기술로 미뤄 이들 건물의 품격이 매우 높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이번 조사에서는 자기, 기와, 청동불상 등 유물 3천여점이 출토됐다. 특히 '법수사금당'(法水寺金堂)이라고 새겨진 평기와와 '법수사시왕당'(水寺十王堂)이라는 글자가 조각된 청동합 등 사찰과 관련된 정보를 알려주는 유물이 나왔다.
법수사는 통일신라시대에는 금당사(金塘寺)로 불렸으나, 고려시대에 중건하면서 법수사로 사찰 명칭이 바뀌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문화층이 발견됐다.
1677년 성주 지역에서 간행된 책인 '경산지'(京山志)에는 법수사가 금당 9개, 종각 8개 등이 있는 천 칸 규모의 사찰이라고 기록돼 있다.
대한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이번 발굴조사는 법수사지의 극히 일부에서만 진행됐다"면서 "추가 조사를 진행하면 합천 해인사를 능가하는 사찰이었다고 하는 법수사의 전모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번 발굴조사의 성과는 오는 27일 오전 11시에 열리는 현장 설명회를 통해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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