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12.26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선물의 시기다.
크리스마스는 물론이고 연말이 되면 소중한 이들에게 작은 물건으로라도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진다.
의복을 정갈하게 해주는 다리미는 특히 새 출발을 하는 젊은이들에게 꽤 괜찮은 선물이다.
20세기 초의 전위적인 예술 운동, 다다와 초현실주의의 주요 일원이었던 만 레이(Man Ray·1890~
1976)에게 다리미는 남보다 더 특별한 의미였다.
러시아계 이민자였던 그의 아버지가 집에서 작은 양복점을 운영하던 재단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다리미뿐 아니라 재봉틀과 실, 바늘 등이 자주 등장한다.
만 레이, 선물, 1921년 원작의 1972년 복제품, 다리미와 못,
17.8×9.4×12.6cm, 런던 테이트미술관 소장.
1921년, 만 레이는 막 파리에 도착한 자기에게 개인전을 열어준 갤러리 주인이자
역시 초현실주의 시인이었던 필리프 수포(Philippe Soupault)에게 다리미를 선물하기로 했다.
그런데 못 열네개를 한 줄로 붙였다.
멀쩡한 옷도 이 다리미질 한 번이면 순식간에 넝마가 될 판이다.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와 함께 거리를 배회하다 공구점에 들어간 만 레이는
그자리에서 다리미 바닥에 접착제를 칠하고 애써 못을 붙이고 좋아했다.
이처럼 평범한 사물들을 비범하게 조합해서 우스꽝스럽고도 섬뜩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다다와 초현실주의 미술가들의 공통적인 감성이었다.
다리미 같지만 다리미가 아닌 기묘한 이 물건은 선물도 하기 전에 바로 그날 저녁 누군가
훔쳐갔는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후 만 레이는 같은 작품의 복제품을 여러 점 만들면서,
'원작은 욕망의 산물이고, 복제품은 필요의 산물이다.
우리가 쓸모없는 형태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종(種)이라니 굉장하지 않은가!'라고 했다.
결국 쓸모없는 짓들이 창조의 근원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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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conda Painting (Rene magritte)
Max Ernst - A Friends' Reunion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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