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12.26 김성현 기자)
피해·기쁨 합성어 '샤덴프로이데' 통해 인간 내면의 善惡 양면성 들여다봐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의 독설, 참가자 굴욕 보며 시청자 통쾌함 느껴
쌤통의 심리학|리처드 스미스 지음|이영아 옮김
현암사|364쪽|1만4000원
"노래도 못 불러, 춤도 못 춰, 대체 나더러 무슨 말을 하라는 겁니까?"
한국에서 인기를 누리는 '슈퍼스타K'와 'K팝스타'의 원조에 해당하는 미국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메리칸 아이돌'이다. 2002년 시작한 이후 켈리 클락슨 같은 팝스타를 배출했으며,
마지막 15번째 시즌을 앞두고 있다. 특히 이 프로그램에서 악명을 떨쳤던 심사위원이
미국 음반 제작자인 사이먼 코웰이었다.
걸핏하면 참가자들의 노래를 중간에 끊고 싸늘한 비웃음과 함께 혹평을 퍼붓기 일쑤였다.
'슈퍼스타K'의 심사위원으로 독설가 역할을 했던 가수 이승철의 미국판이었던 셈이다.
미국 켄터키대 심리학 교수인 저자에 따르면, 악당 역할을 하는 이런 심사위원들은 프로그램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필요악'이다. "귀가 정화되는 감동적인 공연과 실력이 떨어지는 참가자의 굴욕적인 모습이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프로그램의 독특한 묘미가 줄어들고 만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이 망신을 당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시청자들은 알게 모르게
통쾌함을 느낀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악마의 편집'으로 일부 참가자에게 굴욕감을 안겼던 것도
제작상의 실수라기보다는 의도적인 선택에 가까웠던 셈이다.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다'는 속담이 우리에게만 있는 줄 알았더니
최소한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인 건 서양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사회심리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피해'에 해당하는 독일어인 '샤덴(schaden)'과 '기쁨'을 의미하는 '프로이데(freude)'의
합성어인 '샤덴프로이데'를 통해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직역하면 '다른 사람의 불행에서 느끼는 즐거움'이지만, 한국어판 역자는 고심 끝에 '쌤통'이라는 말을 택했다.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뉘앙스 때문에 살짝 계면쩍지만, 반대로 '쌤통'만큼 절묘한 의역도 없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타인과 '하향(下向) 비교'할 때 우월감을 느끼고
엔도르핀이 마구 분비되는 '못된 존재들'이다.
저자는 알기 쉽게 스포츠에서 출발한다. 듀크대와 켄터키대는 미국 대학 농구의 전통적인 라이벌이다.
듀크대의 농구선수가 음주 운전으로 체포되면, 다음 날 켄터키대 교직원들은 남 몰래 쾌재를 부른다.
심지어 상대 팀 선수의 부상을 기뻐하기도 한다.
특히 단체 경기일 경우, 집단의 이익을 위한 일이라는 뚜렷한 명분이 있기 때문에 경쟁 본능은 증폭된다.
스포츠는 차라리 애교에 속한다.
저자는 히틀러의 반(反)유대주의에서도 유대인에 대한 질투심의 징후를 읽어낸다.
당시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대인의 인구 비율은 9%에 불과했지만,
변호사·의사 등 전문직에서는 50~60%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히틀러의 수석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의 회고록을 인용해 저자는 히틀러가 "내심 유대인을 동경하고 질투했다"고 분석한다.
병적인 질투가 증오로 이어졌고, 증오가 결국 대학살의 비극을 낳았다는 분석이다.
이 책은 '샤덴프로이데' 같은 단어를 사용했지만, 실은 '인간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性惡說)과 성선설(性善說)의
고전적 논쟁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것에 가깝다.
한편에 '쌤통 심리학'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이기적인 만족보다는 연민이 개인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긍정 심리학'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도 "쌤통 심리에 집중하는 이유는
우리 인간들이 남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는 단서를 붙인다.
어차피 인간에게는 천사와 악마의 양면성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는 행위는 우리 자신의 내면을 더 깊숙이 파고 들어가기 위한 '지적 탐사 작업'이 될 수도 있다.
이승철이 오디션 현장에서는 독설가였지만, 후배 음악인 육성이나 기부 행위에는 누구보다 발 벗고 앞장서는
가수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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