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프랑스의 정치 삽화. 당시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일본 등 서구 열강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케이크’를 서로 많이 차지하려 전쟁도 불사했다.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이때부터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이 각기 나라 체계를 확립하고 오늘날 G7의 발판을 마련했다. 현재 선진 20개국(G20) 중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 선진국(Advanced)으로 분류한 나라는 9개다. G7에 한국과 호주를 보태 G9으로 일컫는다. G20이 ‘무적함대’ 스페인도 정회원이 아닌 ‘손님 회원(Guest Member)’으로 참여할 정도로 쟁쟁한 국가들의 모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G9의 위상은 실로 대단하다.
G7이 최소 200년에 걸쳐 이룩한(어찌 보면 선점한) 과점적 경제 토대를, 한국만이 반세기 만에 따라잡아 새로 편입했다고 할 수 있다. 호주는 ‘범(汎)영국’계에 속한다. 1955년 한국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 순위가 당시 120개국 중 106위였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한국은 국가 간 무역이 활성화하고, 세계적인 화폐경제와 금융질서가 구축되는 동안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비주류 국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당당히 G9 회원국가다. 그동안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처럼 인식되던 일본과의 1인당 국민소득 격차도 2014년 말 현재 약 2만8000달러(한국)와 3만7000달러(일본)로, 9000달러 정도로 좁혀졌다. 현대경제원 발표에 따르면 구매력 기준(현지 물가 감안) 소득으로는 이미 2015년 각기 3만8760달러(한국), 3만9108달러(일본)로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2016년부터는 역전될 전망이다. LG경제연구원은 2020년부터 명목 1인당 GDP도 역전되리라 예견했다.
중국, GDP 최강국 ‘탈환’?
중국의 성장률은 지난해부터 마의 7.5%대가 깨지긴 했지만, 고작해야 3%대 성장에 만족하는 여타 선진국에 비하면 여전히 두 배 이상이다. 구매력 기준 GDP로 중국은 이미 지난해 미국을 제쳤다. 2030년부터는 명목 GDP도 미국을 제칠 것이라는 게 IMF의 전망이다.
관전 포인트는 중국이 최강국에 ‘등극’하는 게 아니고 ‘탈환’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계량경제학자 앵거스 매디슨의 추정에 따르면 1820년대 중국(청나라)은 GDP가 전 세계 총생산의 32%에 달하는 슈퍼 강대국이었다. 인구도 전 세계 4분의 1인 4억3700만 명 수준이었다. 하지만 1870년대 중국의 GDP가 차지하는 비율은 17.1%로 반토막 났고, 1913년(제1차 세계대전 직전) 8.8%, 1950년에는 4.5%까지 추락했다.
중국이 슈퍼파워의 권좌에서 내려오기 시작한 시점은 아편전쟁(1840~1842년) 직후다. 오늘날 중국의 ‘고도성장’은 1978년부터 시작된 덩샤오핑의 대외경제개방정책이 1990년대부터 빛을 발한 결과라 볼 때, 아편전쟁 이후 ‘잃어버린 150년’을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중국에서 마약사범으로 적발돼 사형당한 내외국인이 한 해 평균 2400명에 달한다. 중국 정부가 마약사범에 대해 매우 엄하게 처벌하는 것은 아편전쟁의 ‘굴욕’을, 국세(國勢)를 꺾은 결정적 전환점으로 자각하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이 아편전쟁을 일으킨 배경을 좀 더 살펴보자. 지금이야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가맹국 간 윈-윈(Win-Win) 상황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당시만 해도 ‘자유무역’은 ‘강자만의 자유’를 뜻했다. 예부터 서양이 동양에서 가장 원하던 물품은 차, 비단, 향신료(점차 면화, 도자기, 곡물로 확대) 등이었다. 유럽은 육식 중심의 식생활을 해왔기에 육류의 양념으로 쓰는 후추 등 향신료가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고전적 동서무역 루트는 아라비아 상인들이 중국에서 물건을 떼어 인도양을 건너 이집트와 시리아 해안도시를 경유해 유럽으로 넘겨주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15세기 말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 서해안에 도착한 것을 계기로 유럽 제국은 배를 통해 동양으로 가는 ‘직거래’를 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