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설왕설래] 운명

바람아님 2016. 1. 17. 00:19
세계일보 2016-1-15

“장성이 어젯밤 군영에 떨어지니/ 그날 돌아가신 선생 소식을 듣노라/ 호장에 군령 소리 들리지 않으니/ 인대에 누가 다시 공훈을 드러내리오···.” (長星昨夜墜前營 訃報先生此日傾 虎帳不聞施號令 麟臺誰復著勳名)

두보가 제갈공명을 기리며 쓴 시 구절이다. 출사표를 바치고 북벌에 나선 촉한의 승상 제갈공명. 위 군대와의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오장원에서 눈을 감는다. 숨을 거두기 전 하늘에서 큰 별똥이 떨어졌다고 한다. 자신의 운명을 내다본 제갈공명. 허수아비를 만들어 ‘죽은 공명’은 사마의를 물리쳤다. 장성(長星)은 혜성이다. 요망한 별이라 여겨 요성(妖星)이라고도 한다. 호장(虎帳)은 장수의 군막이다. 하늘 같은 승상을 잃은 촉한 군사들의 비통함은 오죽했을까. 제갈공명이 숨진 때 나이는 53세. 세종대왕이 눈감은 때 나이와 같다. 미인은 박명(薄命)하고, 영웅은 오래 살기 힘든 걸까.


밤하늘 별의 움직임에서 이치를 찾고자 한 고대 천문학. 동양 천문학의 깊이는 그지없다. 바빌로니아도 동양 못지않다. 바빌로니아 천문학은 기원전 8세기쯤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낮밤, 달, 해의 주기를 연구해 50년을 대년(大年·great year)으로 삼는 우주 주기를 만들었다. 1년을 365일에 0.25일을 더하는 역법(曆法)은 그로부터 비롯된다. 하지만 아라비아를 더 지배한 것은 점성술이다. 사주로 팔자를 푸는 동양의 역학(易學)과 흡사하다. 제갈공명이 본 장성도 그에 닿는다. 운명을 점치는 기술의 위세는 아직도 대단하다.


운명은 결정된 것인가. 미국 우주항공국(NASA)이 지구방위합동본부(PDCO)를 만들었다. 지구로 날아드는 혜성과 소행성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기구라고 한다. 2013년 2월 러시아 첼랴빈스크에 떨어진 무게 1만3000t의 운석. 더 큰 돌덩이가 떨어지면 어찌될까. 이런 세상에 별자리에 운명을 내맡길 수 있겠는가.


조선 북학의 문을 연 홍대용. 영조 41년 청의 북경을 다녀온 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가 설파한 지동설. 지금의 눈으로 봐도 손색이 없다. 이런 말을 했다. “소열(昭烈·유비)이 있으니 제갈도 있었다.” 제갈공명을 있게 한 것은 결정된 운명도, 점치는 기술도 아닌 믿음이었다는 뜻이다.

손가락질 당하는 정치인들. 좇아야 할 것은 운명을 여는 믿음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을까.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