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2.03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해외에서 터무니없는 학술 발표를 듣다가 벌떡 일어나 일갈하고 싶을 때가 있다.
막상 영어 때문에 꿀 먹은 벙어리 모양으로 있다 보면 왜 진작 영어 공부를 제대로 안 했나 싶어
자괴감이 든다. 신라 때 최치원도 그랬던가 보다.
그가 중국에 머물 당시 태위(太尉)에게 자기추천서로 쓴 '재헌계(再獻啓)'의 말미는 이렇다.
"삼가 생각건대 저는 다른 나라의 언어를 통역하고 성대(聖代)의 장구(章句)를 배우다 보니,
춤추는 자태는 짧은 소매로 하기가 어렵고, 변론하는 말은 긴 옷자락에 견주지 못합니다
(伏以某譯殊方之語言, 學聖代之章句, 舞態則難爲短袖, 辯詞則未比長裾)."
자신이 외국인이라 글로 경쟁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만큼은 저들과
자신이 외국인이라 글로 경쟁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만큼은 저들과
경쟁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안타까워 한 말이다.
글 속의 '단수(短袖)'와 '장거(長裾)'는 고사가 있다.
먼저 단수(短袖)는 '한비자(韓非子)' '오두(五蠹)'의 언급에서 끌어왔다.
"속담에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아야 장사를 잘한다'고 하니, 밑천이 넉넉해야 잘하기가 쉽다는 말이다
(鄙諺曰:'長袖善舞, 多錢善賈' 此言多資之易爲工也)."
춤 솜씨가 뛰어나도 긴 소매의 맵시 없이는 솜씨가 바래고 만다.
장사 수완이 좋아도 밑천이 두둑해야 큰돈을 번다.
최치원은 자신의 부족한 언어 구사력을 '짧은 소매'로 표현했다.
장거(長裾), 즉 긴 옷자락은 한나라 추양(鄒陽)의 고사다.
추양이 옥에 갇혔을 때 오왕(吳王) 유비(劉濞)에게 글을 올렸다.
"고루한 내 마음을 꾸몄다면 어느 왕의 문이건 긴 옷자락을 끌고 다닐 수 없었겠습니까?
(飾固陋之心, 則何王之門, 不可曳長裾乎)"
아 첨하는 말로 통치자의 환심을 살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여기서 긴 옷자락은 추양의 도도한 변설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였다.
최치원은 자신이 추양에 견줄 만큼의 웅변은 없어도 실력만큼은 그만 못지않다고 말한 셈이다.
긴소매가 요긴해도 춤 솜씨 없이는 안 된다. 그
런데 사람들은 긴 소매의 현란한 말재간만 멋있다 하니 안타까웠던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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