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가슴으로 읽는 한시] 내 생애

바람아님 2016. 1. 30. 09:25

(출처-조선일보 2016.01.30 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가슴으로 읽는 한시 일러스트


내 생애


성 밑의 달팽이집은 바로 내가 사는 집
성 모퉁이 박토(薄土)는 다름 아닌 나의 생계.

직함을 예전에 반납해 할 일 없어 홀가분하나
환곡을 열심히 구해도 부족한 건 걱정된다.

물살이 잔잔한 물굽이에는 물고기가 새끼를 낳고
비가 많이 온 앞산에는 고사리 순이 솟아난다.

강호에서 한가로이 사는 정취는 물씬 나기에
만호후(萬戶侯) 정승이 이보다 낫진 않으리라.

偶吟


城下蝸廬是我家(성하와려시아가)
城隅薄土卽生涯(성우박토즉생애)

官銜已納欣無事(관함이납흔무사)
公糴勤求患不多(공적근구환부다)

曲浦波恬魚産子(곡포파념어산자)
前山雨足蕨抽芽(전산우족궐추아)

閑居飽得江湖趣(한거포득강호취)
萬戶三公莫此過(만호삼공막차과)


숙종 때의 문인 백야(白野) 조석주(趙錫周·1641 ~1714)가 나이 들어 썼다. 

그는 낮은 관직에 오륙 년 있다가 일찍 은퇴하였다. 

평생 대부분을 특별한 직업 없이 보낸 그가 생애를 되돌아보았다. 

사는 집은 성 안의  오두막이고, 생계는 소출이 적은 박토에 불과하여 참 곤궁한 인생이다. 

퇴직하니 홀가분하기는 한데 늘 굶주림에 허덕인다. 여유가 없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죽으란 법은 없다. 

물고기가 새끼를 많이 친 물굽이도 잘 알고 있고, 고사리 순이 지천인 산자락도 앞에 있다. 

배는 고파도 강호에 사는 멋은 만끽한다. 이 정도 살면 정승보다 낫다고 허세를 부려도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