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6.02.05 00:52
예쁘면 다 착하다. 기자의 개인적 생각은 아니니 오해는 마시길. 그리스 여성 시인 사포가 무려 기원전 7세기에 남겼다고 전해지는 말이다(정작 그의 외모는 어땠을지 궁금해 찾아봤다.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가 남긴 그림엔 눈매가 또렷한 미인으로 묘사돼 있다).
사포가 남긴 말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유효하다. “외모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반박을 하시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자. 설 연휴가 곧 시작되지만 번화가의 성형외과들 중엔 ‘설 당일만 쉽니다’는 안내문을 붙여 놓은 곳이 꽤 많다. 남성이 성형외과 고객층에 유입된 건 오래전이고, 요즘엔 어르신들의 동안(童顔) 수요에 맞춘 ‘효도 성형’이 유행이란다.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은 이렇게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인류를 억눌러 왔다. 외모가 능력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
실제로 외모가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텍사스대 경제학과 대니얼 하머메시 교수는 『아름다움은 돈이 된다』에서 “못생긴 이들은 잘생긴 이들보다 23만 달러(약 2억7700만원)의 손해를 본다”며 “평균 이상의 외모를 가진 남성은 임금을 5% 더 받는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이쯤 되면 ‘외모 수저론’이라도 나올 판이다.
이 와중에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 온 바비인형 제작사 마텔에서 최근 색다른 신제품을 내놨다. 깡마른 체형으로 미의 기준을 왜곡시켰다는 오리지널 바비보다 소위 ‘정상인’에 가깝도록 디자인했다고 한다. 다음달 출시된다는 이 신형 바비인형을 두고 마텔은 ‘굴곡진(curvy)’ 체형이라는 표현을 썼다. 마텔 측은 “몸매가 어떠하든 별문제가 안 된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지만 이 설명은 공허하다. ‘굴곡진’ 체형이라는 외교적 표현 때문이다. 통통한, 아니 뚱뚱한 걸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에둘러 표현해야 사람들이 거부감이 없는 게 현실이라는 점만 새삼 깨닫게 돼서다.
이왕 이럴 거, 아예 ‘외모고시’를 만드는 건 어떨까 하는 허황된 상상도 해본다. 타고난 외모뿐 아니라 외모를 가꾸기 위해 노력한 정도 를 계량적으로 측정하는 방식을 고안해서 말이다. 물론 통통한 게 뭐가 어때서 ‘굴곡진’ 몸매라는 표현을 써야 하는 건지 심술이 나서 해본 상상일 뿐 그런 고시가 있다면 끔찍하다. 다가오는 설만큼은 통통해지는 걸 두려워 말고 마음껏 풍성한 명절들 보내시길. 『아름다움의 과학』을 쓴 울리히 렌츠는 말했다. “아름다움에서 자유로워져야 진정하게 아름답다”고.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사포가 남긴 말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유효하다. “외모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반박을 하시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자. 설 연휴가 곧 시작되지만 번화가의 성형외과들 중엔 ‘설 당일만 쉽니다’는 안내문을 붙여 놓은 곳이 꽤 많다. 남성이 성형외과 고객층에 유입된 건 오래전이고, 요즘엔 어르신들의 동안(童顔) 수요에 맞춘 ‘효도 성형’이 유행이란다.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은 이렇게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인류를 억눌러 왔다. 외모가 능력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
실제로 외모가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텍사스대 경제학과 대니얼 하머메시 교수는 『아름다움은 돈이 된다』에서 “못생긴 이들은 잘생긴 이들보다 23만 달러(약 2억7700만원)의 손해를 본다”며 “평균 이상의 외모를 가진 남성은 임금을 5% 더 받는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이쯤 되면 ‘외모 수저론’이라도 나올 판이다.
이 와중에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 온 바비인형 제작사 마텔에서 최근 색다른 신제품을 내놨다. 깡마른 체형으로 미의 기준을 왜곡시켰다는 오리지널 바비보다 소위 ‘정상인’에 가깝도록 디자인했다고 한다. 다음달 출시된다는 이 신형 바비인형을 두고 마텔은 ‘굴곡진(curvy)’ 체형이라는 표현을 썼다. 마텔 측은 “몸매가 어떠하든 별문제가 안 된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지만 이 설명은 공허하다. ‘굴곡진’ 체형이라는 외교적 표현 때문이다. 통통한, 아니 뚱뚱한 걸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에둘러 표현해야 사람들이 거부감이 없는 게 현실이라는 점만 새삼 깨닫게 돼서다.
이왕 이럴 거, 아예 ‘외모고시’를 만드는 건 어떨까 하는 허황된 상상도 해본다. 타고난 외모뿐 아니라 외모를 가꾸기 위해 노력한 정도 를 계량적으로 측정하는 방식을 고안해서 말이다. 물론 통통한 게 뭐가 어때서 ‘굴곡진’ 몸매라는 표현을 써야 하는 건지 심술이 나서 해본 상상일 뿐 그런 고시가 있다면 끔찍하다. 다가오는 설만큼은 통통해지는 걸 두려워 말고 마음껏 풍성한 명절들 보내시길. 『아름다움의 과학』을 쓴 울리히 렌츠는 말했다. “아름다움에서 자유로워져야 진정하게 아름답다”고.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구스타프 클림트-사포
Sappho. 1877. / Charles-August Mengin (French, 1853-1933)
Sappho and Alcaeus
부그르(Bouguereau)作. Oil on canvas, 1881
66 x 122 cm, Private collection
Charles Gleyre, Le Coucher de Sapp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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