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時事·常識

[노트북을 열며] ‘우리의 뉴노멀’ 외전

바람아님 2016. 2. 19. 00:27
[중앙일보] 입력 2016.02.18 00:44
기사 이미지

김영훈 디지털제작실장


조순(88) 서울대 명예교수가 오늘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한다. 미리 공개된 원고 ‘우리의 뉴노멀(New Normal)’은 인상 깊다. 그는 한국의 뉴노멀을 반세기 동안 이어진 비정상이 쌓여 생긴 비정상이라고 규정했다. 노(老)학자의 글에 일상을 비췄다.

 #1. 서울 이태원 ‘오레노(ORENO)’의 줄은 길었다. 일본 오레노를 다녀온 A가 꼭 가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았다면 진작 포기하고 딴 집에 갔을 것이다. 오레노는 고급 프랑스 요리를 싸게 판다. 대신 서서 먹어야 한다. 앉는 자리도 있다. 대신 자리 값을 따로 내야 한다. 3분의 1 싼 값에 팔되 회전율을 3배로 높인다는 발상이다. 오레노는 2011년 9월 일본에서 53㎡의 작은 가게로 시작했다. 창업자는 오디오·피아노·화장품 판매 등을 전전하다 중고 서점 ‘북오프’로 성공했다. 두 번째 대박이 오레노다. 사카모토 다카시 사장은 말한다. “내 회사는 요리사를 비롯해 전 종업원의 행복을 추구하는 회사다.”

 분명한 기업 철학, 현장에서 싹 튼 아이디어가 오레노를 낳았다. 한국에는 지난해 여름 들어왔다. 일본과 다 같은데 딱 하나가 다르다. 그런데 그 하나가 결정적이다. 한국 오레노는 한화그룹이 운영한다. 철학과 아이디어의 자리를 자금력이 꿰찼다. 이태원에 이어 2호 점포도 곧 생길 태세다. 레스토랑을 탐하는 대기업 앞에 자영업의 도전은 주춤할 수밖에 없다.

 노학자는 지적한다. “세간에는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라는 말이 유행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우리 사회는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이 매우 약하다. 한국의 30대 재벌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다름이 없고, 중견 기업이 상향 이동한 것도 거의 없다. 한국은 다이내믹한 사회가 아닌 것이다.”

 #2. 오레노에 함께 간 A는 맛있는 요리를 앞에 두고 밥맛 떨어지는 얘기를 했다. 그는 사교육 없이 아이를 키웠다. “학교 성적이 다는 아니잖아”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런데 학원에 다니지 않고도 공부를 곧잘 하던 아이는 고2가 되면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등수 떨어지는 게 보이니까 안 되겠더라고. 나중에 그때 왜 공부를 더 시키지 않았느냐고 원망할 것 같기도 하고….” 아이는 겨울 방학 내내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되는 학원 ‘윈터 스쿨’을 다녔다. “제일 마음이 아픈 건, 애가 취업란 뉴스를 보다가 자기도 나중에 그럴까봐 걱정된다는 얘기를 할 때였어. 고등학생이… 나 참….”

  조순은 말한다. “교육의 내용과 제도를 개혁해 인재를 잘 길러서 고용을 늘리고 가족을 복원해 국풍을 바로잡는 것을 뉴노멀 극복의 패러다임으로 삼아야 한다. 교육의 목적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은 돈을 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인재를 기르는 데 있다. 교육을 돈의 노예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김영훈 디지털제작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