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 딸! 너희가 있어 나는 참 행복했다. 누구나 살아간다는 것은 죽음을 향해 가는 여정이다. 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떠나고 싶다. 내가 의식하지 못한 죽음이 찾아왔을 때 너희가 당황하지 않도록 이 글을 써 놓는다’.
시인 이지선(67)씨의 안방 거울에 붙어있는 글이다. 글의 제목은 ‘죽음 준비에 대한 나의 결심’이다. 이씨가 직접 작성한 ‘사전장례의향서’다. 그는 매일 아침 이렇게 죽음과 마주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씨는 2011년 담도암으로 투병하던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다. 남편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자신도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단다.
그는 “남편을 보내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사전장례의향서 작성”이라며 “의향서를 복사해 아들과 딸 내외에게도 한 통씩 줬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자식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내 의견을 미리 밝혀두고 싶어서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거울에 의향서를 붙인 것은 만일 무슨 일이 내게 일어날 때 누구라도 빨리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대비”라며 “아침에 일어나 글을 읽고 나면 하루하루를 더 소중히, 그리고 열심히 보내게 된다”고 말했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래서 두렵다. 하지만 생(生)이 그렇듯 사(死)도 삶의 자연스러운 한 과정이다. 죽음이 무섭게 느껴지는 건 아무런 준비가 없어서다.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주치의이자 승려인 배리 커즌은 “우리는 결국 죽는다는 걸 알지만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이는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웰다잉(well-dying)’이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국가로 평가된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6명이 죽음을 생각하면 ‘두렵다’고 답했다.
2013년 씨티은행 자료에 따르면 ‘유언장이 있다’고 답한 한국인은 응답자의 2%에 불과했다. 중국이나 호주·싱가포르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7개국 평균은 15%였다.
2010년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기관인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의 ‘죽음의 질 지수’ 조사에서도 한국은 40개국 가운데 32위에 불과했다.
이런 가운데 이씨처럼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신의 의사에 따라 풍요롭고 뜻깊은 죽음을 맞자는 뜻에서다.
이씨가 작성한 사전장례의향서에는 ‘생명 연장을 위한 의료시술이나 3기 이상의 암일 경우 수술을 거부한다’ ‘생명을 다할 때 모든 장기와 시신은 기증한다’ ‘장례는 축제로 치르되 내 문상객은 조의금을 받지 않는다’ 등 8가지 항목이 있다.
사전장례의향서는 작성자가 자신의 사후 부고 범위와 장례 방식 같은 당부 사항을 미리 적어놓는 지침서다. 법적 효력은 없지만 자신의 장례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게 된다.
‘고령자의 삶의 질 향상 운동’을 펼치는 골든에이지포럼의 김일순(연세대 명예교수) 공동대표는 “2012년부터 사전장례의향서 보급을 시작했는데 초기엔 별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난해에만 1만 부 이상의 의향서가 배포됐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포럼에서 배포한 의향서는 총 4만 부이며 현재 5000부를 추가로 인쇄 중이다.
장례는 죽은 자를 위한 의례다. 하지만 죽음 이후에 진행되기 때문에 남아 있는 사람에 의해 치러진다. 그래서 고인이 아닌 유족 중심으로 모든 의례가 진행된다.
고(故) 최규하·노무현·김대중·김영삼 등 전 대통령의 장례를 진행한 대한민국장례문화원 유재철 원장은 “언젠부턴가 장례의 주인공은 고인이 아니라 상주와 유족이 돼 버렸다. 고인의 뜻이 중요하기보다는 상주의 체면을 우선하는 의식으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생전에 자신의 장례를 직접 설계한 사람으로 1995년 세상을 뜬 한국 최초의 안과의사 공병우 박사가 꼽힌다.
공 박사는 별세 6년 전부터 미리 유언장을 작성하고 자서전을 썼다. “내가 죽거든 장기는 모두 기증하고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 죽어서 한 평 땅을 차지하느니 그 자리에 콩을 심는 것이 낫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그의 시신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해부학 교실에 기증됐고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뒤늦게 알려졌다.
공 박사의 차남이자 그의 안과병원을 이어 운영하고 있는 공영태(68) 원장은 “아버지는 생전에 호화스러운 장례식이나 결혼식을 보면 ‘돈 낭비, 시간 낭비’라고 굉장히 싫어하셨다. 당시 장례 문화가 굉장히 보수적이라 시신 기증에 대한 집안 어른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워낙 아버지의 뜻이 강했다”고 전했다.
공씨는 “젊었을 때는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마음에 와 닿거나 그런 게 없었지만, 나도 나이를 먹다 보니 아버지 뜻이 옳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우종옥(78) 전 교원대 총장도 지난해 자녀들을 모아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내 장례식은 형식에 얽매지 말고 간소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건강할 때 미리 죽음을 준비하고 싶었다”고 했다.
전통예절을 가르치는 예지원의 순남숙 본부장은 “수녀가 되는 게 꿈이었던 여성이 수의를 수녀복으로 마련해 달라고 부탁한 경우가 있었다. 수녀 수의를 입은 고인의 모습이 너무 평안해 보였다”고 말했다
이지선씨의 남편 박소담 시인은 2년의 투병 기간 동안 죽음을 준비했다. 마지막엔 부부뿐 아니라 자녀와 형제가 함께 ‘죽음맞이’의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씨 부부는 가족과 친구 등 꼭 만나야 할 사람의 리스트를 만들어 일일이 찾아다니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또 부부 시집을 만들었다.
‘축제와 같은 장례식’을 만들고 싶다는 박씨의 뜻에 따라 장례식장엔 음악이 흘렀고 시 낭송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씨는 “다른 사람이 보기엔 이상한 장례식이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꿔 결혼식보다 더 화려한 장례식을 마련했다”며 “고인의 생전 활동 모습을 담은 영상물을 제작해 장례식장에서 틀고 남편이 좋아했던 꽃으로 나와 자녀, 친구들이 화환을 만들어 보냈다”고 했다.
그가 남편의 영전에 보낸 화환 리본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열심히 산 그대, 천국에서도 화이팅!’
대다수 한국인에게 죽음이란 단어는 금기어 중 하나다. 나이가 많을수록 더 그렇다.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죽음에 대한 강의를 하는 한 강사는 “죽음이란 단어를 직접 쓰면 거부반응부터 보이는 어른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죽음을 피할 순 없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노년기 죽음준비 교육은 여생의 의미와 소중함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김일순 공동대표는 “한국 사회는 그동안 잘 살기 위한 성장기 교육에만 집중하고 중년 이후 삶에 대해선 소홀했다. 행복한 마무리를 위해 교육을 받고 준비하는 것이 진정한 노년의 가치”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오늘도 정거장을 향해 걷습니다. 다른 세상으로 떠날 기차를 타기 위해. 어제 떠난 사람과 오늘 남은 사람의 차이점은 오늘도 걸어갈 조금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박소담 유고집 『삶, 그 찬란한 아픔이여』 중에서.
[S BOX] 삶 정리하는 자서전·엔딩노트 쓰고 ‘버킷리스트’ 실천해보라
죽음은 선택이 아니다. 그래도 막상 준비하려고 하면 막연하다.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럴 땐 소박한 자서전을 써보는 건 어떨까. 자서전은 인생의 기록이다. 자신의 경험에 대한 겸허하고 진솔한 글은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는 계기는 물론 가족과 다른 사람에게도 귀감이 될 수 있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정리한 ‘버킷리스트(Bucket list)’도 적어보자.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을 만들어 하나씩 지워 나가면서 꿈을 현실화하는 작업은 노년기 삶의 새로운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사전장례의향서도 긴요한 준비물이다. 생전에 작성한 의향서를 통해 장례 형식이나 부의금과 조화, 수의, 관, 시신 처리 등을 본인의 뜻에 맞게 진행할 수 있어 형식이나 절차 문제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과 혼란을 막을 수 있다.
유언장엔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날짜 등 개인정보를 꼭 넣어야 한다. 그리고 임종·장례 방식, 각종 금융 및 자산 관련 정보와 유산배분 방식, 그리고 남기고 싶은 말 등을 넣으면 된다. 유언자가 직접 종이에 쓸 경우 별도의 공증이 없어도 법적 효력을 갖는다.
하지만 컴퓨터로 유언장을 작성한 뒤 프린터로 인쇄할 경우엔 공증이 필요하다. 유언자의 음성과 영상 기록 등은 공증 없이 법적 효력을 갖는다.
자신의 장례에 대한 의사를 후손들에게 알리는 서류를 ‘엔딩 노트(Ending Note)’라고 부르기도 한다. 죽음의 목전에서 삶을 정리하고 사후 장례 희망을 노트에 적는 노인을 다룬, 같은 이름의 일본 다큐멘터리(2011년)에서 유래했다.
글=곽재민·홍상지 기자 jmkwak@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