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최근 학계 안팎에서 거센 논란이 이는 한국의 고대사를 일본의 식민주의 역사학자들은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돌아보는 학술회의가 25일 열렸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는 이날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 인문대에서 '역사학자를 통해 본 '식민주의 역사학''을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한나라가 고조선을 무너뜨리고 설치한 이른바 '한사군'의 위치를 평양 인근으로 바라본 강단사학자들의 주장을 두고 재야학계에서 '식민사관'이라고 공격하는 가운데 일본의 식민사학을 돌아보고 근대역사학의 흐름을 살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발표자로 나선 박찬흥 국회도서관 조사관은 도쿄제국대에서 조선사를 가르친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의 한사군과 고구려 역사 연구를 분석했다.
박 조사관에 따르면 이케우치는 한사군을 '작은 중국'으로 인식했고 고구려는 만주민족의 하나인 예맥족이 세운 국가로 봤다.
따라서 한사군과 고구려와의 갈등은 중국과 만주민족 간의 대립이었고, 이후 고구려가 확대·발전해 한사군을 축출한 것은 만주민족이 중국 세력을 몰아낸 것으로 해석했다.
나아가 일본은 한반도 남부에 '임나'(가야)라는 직할령을 가지고 백제를 후원하면서 고구려나 당나라에 대항했다고 주장했다.
박 조사원은 "이케우치는 고대 조선사를 중국, 만주, 일본 세 강대국의 각축장으로 보는 '타율적 역사'로 귀결시켰고 강대국 중국과 일본 간의 대립만 부각했다"고 비판했다.
정준영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는 교토제국대와 경성제국대학에서 조선사를 연구한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낙랑군 연구를 살폈다.
정 교수는 "고대 일본과 중국의 문화 교류를 설명하려면 한반도에 있는 조선인이 문화의 전수자 역할을 했다고 봐야 했을 것"이라며 "한반도를 통한 문화 교류를 설명하면서도 일본의 주체성을 포기하지 않고자 나온 것이 낙랑군을 중심으로 한 한사군 연구였다"고 설명했다.
이마니시를 필두로 한 식민사학자들은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중국 문화의 전파 과정에서 조선인을 배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 교수는 "이마니시는 중국의 영향이 단순히 외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선 내 중국이 존재하면서 내면화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중국을 걷어내는 과정'을 '일본 민족이 되는 과정'으로 합리화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식민사학이 수많은 오류에도 어쩌면 그렇게 당당하게, 독자가 이 학설을 객관적이고도 과학적인 '진리'를 드러내고 있다고 믿도록 했는지 규명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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