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人文,社會

[철학이야기] '세상 만물은 하나다'… 동물도 인간만큼 소중해요

바람아님 2016. 4. 14. 08:50

(출처-조선일보 2016.04.14 기획·구성=김지연 기자/ 채석용 대전대 교수·철학)

[장자의 '만물일체설']

장자, 만물이 동등한 관계라 주장… 실험 동물에겐 미안한 마음 가져야
유전자상 모든 생명체 조상 같기에 동물의 마음 헤아리고 느껴봐요

오는 24일은 '세계 실험실 동물의 날'이에요. 
여러분은 약품 개발을 할 때 동물을 희생시켜 실험하는 것 어떻게 생각하세요? 
인간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 혹은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지금도 많은 동물실험이 진행되고 있어요. 
동물들이 실험 과정에서 고통 받거나 심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생각해 동물실험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만약 동물실험을 모두 중단한다면 안전한 약이나 식품, 화장품을 만드는 것이 훨씬 어려워질 거예요.

과거 서양 사람들은 동물실험이 윤리적으로 문제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은 동물을 위해 있는 것이고 동물은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말했고, 
동물이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서구 근대 철학의 창시자인 데카르트는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은 동물은 기계와 다를 바 없는 것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데카르트는 동물은 인간에 비해 중요한 생명체가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러니 서양의 근대 과학자들은 살아 있는 상태의 동물로 실험을 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지요. 
서구인들은 동물을 실험하면서 얻은 지식을 토대로 생물학, 의학, 약학 등 과학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뤘지요. 
그러다 20세기 이후 인간에게 인권이 있듯 동물에게도 동물권이 있다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어요. 
동물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따르면, 동물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동물실험을 중단해야 한다고 해요. 
하지만 만약 우리가 지금 진행 중인 동물실험을 중단한다면 앞으로 과학 발전이 느려질 수 있겠죠.

장자는 만물이 동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동물들에게도 인간과 똑같은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동양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 전 여러 나라가 중국 대륙의 패권을 다투던 시기)에 활약했던 
장자(莊子)라는 사람이 그 대표자예요. 장자는 자연 만물이 결국 모두 하나라는 '만물일체설'을 주장했어요. 
장자는 인간과 동물, 나아가 만물이 모두 동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인간만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내세워 자연을 파괴하고 동물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비판했어요. 
장자의 주장에 따르면, 동물을 실험하는 것은 사람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나쁜 행동이랍니다.
[철학이야기] '세상 만물은 하나다'… 동물도 인간만큼 소중해요
 /그림=정서용
어느 날 장자가 친구인 '혜시'와 함께 다리 위를 건너고 있었어요. 
장자는 다리 아래 물속에서 노닐고 있는 물고기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지요. 
"물고기가 물속에서 아주 즐겁게 노닐고 있구나." 장자의 말을 들은 혜시가 이렇게 말했어요.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가 즐거운지 알 수 있는가?" 혜시의 질문이 날카롭지요? 
그러나 호락호락 물러날 장자가 아니에요. 장자는 이렇게 답했어요.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어때요? 장자의 대답이 훨씬 절묘하군요.

앞서 혜시는 사람과 동물은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장자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고 
확신한 거고요. 
그러나 혜시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과 동물이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없다면,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다른 친구의 마음을 
짐작할 수 없지 않겠어요? 장자는 사람과 동물 사이의 관계나, 사람과 다른 사람의 관계가 동등하다고 보았죠. 
사람들끼리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며 존중하듯 사람과 동물끼리도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거예요.

과학적으로 모든 생명체의 조상이 같아

과학이 더욱 발전하면서 장자의 만물일체설이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답니다. 
유전학자들은 놀랍게도 우리의 조상과 강아지의 조상, 나아가 모든 생명체의 조상이 같다고 이야기해요. 
이를 '공통 조상 이론'이라고 하지요. 
약 40억년 전 지구에 최초의 생명체가 나타난 이후, 자손을 낳고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진화가 일어나 지금 존재하는 
지구 상의 수많은 생명체가 탄생했다는 거예요. 지구 상 모든 생명체의 세포 속에는 유전자가 있는데, 
이 유전자를 이루는 단백질을 살펴보면 서로 다른 동물들이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출발했다는 증거가 많이 발견된대요. 
그러니 만물이 일체라는 장자의 주장은 옳은 것이죠.

물론 장자는 유전학이나 진화론을 알지 못했어요. 그러나 만물이 하나로서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요. 
모든 생명체는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모두 동등해요. 
인간만이 다른 동물들과 달리 위대하고 신성한 생명체인 것은 아니에요. 
우리가 지금 당장 모든 동물실험을 중단하고 고기 먹는 것을 그칠 수는 없어요. 
그러나 동물들의 희생을 떠올리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며 고마운 마음을 가질 수는 있겠지요. 
사람과 동물을 하나라고 생각한 장자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동물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