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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앙의 서울일기 ⑥ 인생의 첫날처럼 사는 법

바람아님 2016. 4. 17. 00:04
[중앙일보] 입력 2016.04.09 00:36

매 순간 우리는 과거의 자신을 떠나 새롭게 태어나고 싶어 한다. 지금까지 쌓여 온 온갖 회한과 후회, 진정한 삶을 가로막아 온 숱한 편견을 깨끗이 청산하는 것이다.

고대 철학자들은 존재의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하루하루 살아갈 것을 권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그들의 권고를 따르기로 결심해 보는 것은 어떤가.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질까. 일단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따라 든든한 평화 속에 안착할 수도 있고, 한없는 의기소침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아침부터 침울한 일상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항상 새로울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아직은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야말로 희소식이다. 우리는 언제든 우리의 순수함을 되찾을 수 있다. 현실에 맞선 천진함, 약간의 경쾌함까지도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다. 고대 사상가들은 놀라움을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진실로 삶을 들여다보고 자연을 관찰하며 인간을 포용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신비를 체험하게 된다. 파고들수록 일체가 설명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일상의 학교에서도 얼마든지 놀라워할 수 있는 이는 존재 앞에 무한히 열려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얼마나 세상을 있는 그대로 살지 못하고 우리 자신만의 세계 속에 갇혀 지내는가. 끝없는 되새김질과 악착같은 편견들, 고질적인 욕망에 얽매인 우리는 결국 이 지구를 떠나 상념만으로 구축된 별천지를 하염없이 떠도는 것은 아닌지. 현실세계와 그 속을 살아가는 이웃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한 채 상상의 궁전에 틀어박혀 지내는 것은 아닌지.

감옥 밖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자기 마음부터 활짝 여는 것이 순서다. 나는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아무 망설임 없이 다가가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눈다. 거기엔 어떤 계산도, 선입견도 개입할 여지가 없다. 서울에 도착하면서부터 나는 눈을 마주치는 누구와도 정겹게 인사를 나누는 것이 버릇처럼 자리 잡았다.

영적인 삶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은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나 자신을 타인 앞에 열어 보여야 자기중심적인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간은 성심을 다해 온전히 살아 있지 못하기에 죽음이 두려운 거다. 인도의 현자 스와미 프라즈난파드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사고는 인용이요, 그대의 감정은 모방이며, 그대의 행위는 흉내 내기다.”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는 우리의 처지, 자동화된 로봇처럼 작동하는 것에 불과한 우리네 삶을 예리하게 지적한 말이다.

이는 곧 자유로운 존재가 되라는 부름이요, 과거의 상처가 더는 삶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트라우마 자체를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라는 격려다. 이에 진심으로 응할 때 세상은 새로운 맛과 향을 두르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 우리는 일상의 모든 것에서 습관과 통념의 먼지를 떨어낼 수 있다. 누군가에게 진심에서 우러나는 아침인사를 건넬 수 있다. 단순한 예의가 아닌 마음 깊은 감사를 표할 수 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또는 멀쩡하던 컴퓨터가 고장 나는 순간 영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언제 어느 때나 새롭게 살아갈 수 있다!

초침이 가리키는 순간들은 그 하나하나가 이미 지나간 궤적과는 다르게 전진하라는 각별한 초대다. 삶의 희열을 가로막는 진짜 장애물을 심리학에서는 ‘쾌락에의 적응’이라고 진단한다. 인간이란 순조로운 것에 익숙해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불만족스러운 문제들, 난관들에 집중하게 된다는 뜻이다.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 그것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에게 주어지는 모두가 선물임을 깨닫는 일이다.

졸리앙 스위스 철학자 / 번역 성귀수